[문화산책] 삼천만의 열망이 만들어낸 기적

  • 박지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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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09 07:44  |  수정 2023-03-09 07:44  |  발행일 2023-03-09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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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음〈소설가〉

딜쿠샤는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했다. 1923년에 머릿돌을 올리고 앨버트와 메리 부부가 머물던 종로구 행촌동의 가옥이며, 현재는 기념관으로 복원되었다. 앨버트 테일러는 기미 독립선언문을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나는 딜쿠샤를 소재로 단편소설을 썼다. '너는 어디에서 살고 싶니'라는 제목이었다. 이 소설을 읽고 'UPI(United Press International)'에서 연락이 왔다. 인터뷰를 하기로 한 날 종로에서 집회가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고 택시를 탔던 나는 길이 막혀 진땀을 흘렸다. 지하철로 갈아타고 뛰어서 딜쿠샤로 향했다. 독립문역에서 내렸을 때 내가 걷는 길이 대부분 독립운동과 관련된 길임을 알게 되었다. 독립군 로드를 만들면 어떨까. 종로에서 독립군 로드를 걸어서 딜쿠샤까지 올라오면, 후손들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뜨거워지겠구나. 뛰면서 생각했다. 딜쿠샤에 도착하자 UPI 기자님들이 세 분이나 나와 계셨다. 사진기자님 한 분, 신입 기자님과 담당 기자님이었다.

앨버트 테일러가 전한 기미 독립선언서를 최초 보도한 것은 AP통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보다 3일 전, 다른 신문에서 보도했으며 앨버트 테일러는 UPI의 전신인 UP 기자로 활동했었다고 한다. 충남 아산의 독립기념관에 기록이 남아 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이 내 앞에서 드러나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딜쿠샤의 머릿돌은 1923년이고 내가 딜쿠샤를 찾은 날은 2023년이었다. 백 년이 된 그 집의 진실이 소설가 앞에서 밝혀지고, 백 년 전 사람의 이야기를 다시 할 수 있다는 것.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일인가. 나는 벽난로를 중심에 두고 그 집에 살았던 테일러 부부 세대와 내 소설 속 부모 세대,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현재의 세대에 관하여 얘기했다. 메리의 가족이 있던 공간에 집이 없는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고, 이제는 후손들이 관람하러 온다.

나는 우리가 찾아내고 지켜야 할 독립운동가들의 공간을 생각했다. 내가 과거의 테일러와 메리였다면, 기미 독립선언서를 세상에 처음 나온 내 자식의 이불 밑에 숨길 수 있었을까. 그 용기는 그때 전국 팔도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던 삼천만의 열망이 만들어낸 기적이 아니었을까. 그 생각을 하자 나는 가슴이 뜨겁게 일렁였다. 현실의 공간은 작품 안에 들어오면서 상상력으로 인해 무한히 확장된다. 가끔은 좁은 집 안에 수만의 사람을 모아 놓고 독립운동을 할 수도 있다.

그날 나의 딜쿠샤에는 삼천만이 모여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박지음〈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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