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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개봉작 202편 대상 성별 인력 비중 |
지난 3월8일은 올해로 115주년을 맞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이에 맞춰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하나의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발표된 보고서는 '2022년 한국 영화산업 성인지 결산'으로 영화산업 내 성인지와 관련된 통계와 이슈를 담고 있다. 한국의 영화계가 성인지와 관련한 자료를 발표하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이다. 또한 이 해에 촉발된 문화예술계 '미투(metoo)'운동이 계기가 되어 2018년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 만들어졌고, 같은 해 8월 영화진흥위원회에 한국영화성평등 소위원회가 신설되었다. 한국 영화산업 환경을 보다 공정하게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지난 몇 년간 지속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영화산업 내 성인지 평가는
美 아카데미 "백인 위주의 시상식" 비판 수용
소수자 포용 기준 수립 2025년부터 반영키로
英 BFI는 '다양성 표준' 프레임워크 적용 중
한국도 더 많은 소수자 참여할 제도 개선 필요
할리우드에서는 백인남성 중심의 구조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2010년대 중반 이후 많은 다양성, 포용성 보고서들이 발표되고 있다. 한국의 성인지 보고서가 여성 중심의 보고서라고 한다면, 이들 보고서는 성별, 인종, 민족, 성 소수자, 장애인 등 보다 넓은 범주를 다루고 있다. 3월12일 시상식이 열린 미국 아카데미는 몇 해 전 있었던 'OscarSoWhite'(오스카는 너무 희다)라는 해시태그 캠페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백인 위주의 시상식이라는 비판을 계속 받아왔다. 이에 아카데미는 여성과 소수 인종의 회원 비율을 높이고, 작품상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영화 속 줄거리 및 등장인물, 제작진, 교육, 배급 및 마케팅 분야에서 소수자들이 비중 있게 참여해야 한다는 기준을 수립했다. 그리고 이 기준은 2024년 만들어지는 영화에 처음 적용해 2025년 시상식에서부터 반영한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가 아카데미에서 수상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올해에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양자경 배우가 아시아인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가에 대해 이목이 쏠려 있기도 하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와 같은 기구인 국립영화센터 CNC가 중심이 되어 양성평등을 위한 영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CNC는 영화 및 시청각 분야의 양성평등 감시기구를 설치하고 '영화 및 시청각 산업 내 여성의 지위'라는 보고서를 매년 발간한다. 또한 여성인력의 진출을 위하여 각종 위원회 구성에 있어 남녀동수제를 시행하고, 지원사업의 경우 여성 비율이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이밖에 성폭력과 관련하여 피해자 보호를 위한 상담지원 및 예방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영국은 이 분야에 있어 꽤 구체적인 정책을 가지고 있다. 영국영화협회(BFI)는 'BFI 다양성 표준'이라는 프레임워크를 만들어 적용하고 있는데, 이는 영화산업에서 대표성이 적은 소수자 그룹의 대표성을 더 높이고 더 넓은 범위의 관객들을 영화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영국은 이미 평등법(차별금지법)을 통해 장애, 성전환, 인종, 종교 및 신념, 성적 취향 등 다양한 특징들을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BFI 다양성 표준은 기본적으로 평등법에서 말하는 특징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평등법에서 언급하지 않는 지역참여, 돌봄의무, 사회경제적 배경 등의 영역도 포괄해 더 많은 소수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2022년 한국 영화산업 성인지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영화산업은 여전히 불공정한 구조로 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22년 개봉작 202편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전체 여성 인력의 비중은 26%로 지난해 26.3%와 비슷했다. 여성 감독은 20.2%, 여성 제작자는 22.2%, 여성 프로듀서는 31.4%, 여성 주연은 46%, 여성 각본가는 28.6%, 여성 촬영감독은 11.4%로 나타났다. 이 중 순제작비 30억원 이상의 상업영화를 기준으로 본다면 전체 여성인력 비중은 16.9%로 더 낮아진다. 또한 2022년 흥행 순위 30위 한국영화 중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작품은 총 10편으로 최근 5년 사이 가장 낮은 수치였으며, 여성 스테레오타입 테스트 해당작 역시 11편으로 전년의 2편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이는 결국 카메라 앞과 카메라 뒤가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음을 증명하는 결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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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
하지만 이러한 지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 있어 부정적인 인식도 존재한다. 성평등 정책이 이른바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주의라 불려지며, 과도한 PC주의는 오히려 작품의 질을 떨어트리고,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가령 디즈니가 실사로 제작하는 '인어공주'에서 주인공인 인어공주가 흑인이라는 설정에 대한 비판 등이 이러한 논란에 해당된다. 물론 영화에서의 모든 표현이 PC적일 필요는 없다. 가령 극의 흐름상 소위 PC하지 못한 캐릭터가 필요하다면 충분히 영화 내에 이를 등장시킬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작품적 평가와는 별개로 최근 남성의 역차별 이슈가 제기되듯이 과도한 PC주의에 대한 경계 또는 반감의 기류에 따라 이 논란 역시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앞선 통계에서 보이듯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을 어떻게 바로 잡느냐는 당면한 과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 영역에서의 지속적인 제도적 개선이 뒷받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올해 115주년 세계 여성의 날 캠페인 주제가 '공정을 포용하라(#EmbraceEquity)'라고 한다. 이는 평등한 기회 제공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지표가 이를 가리키고 있고, 한국의 영화산업도 마찬가지이다. 공정이라는 단어가 어느 때보다 많이 회자되고 있는 지금, 그 공정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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