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형복의 텃밭 인문학] 한국의 식량안보는 튼튼한가…밀·옥수수 국내자급률 1% 미만…안정적인 곡물 공급망 절실

  • 채형복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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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17 09:26  |  수정 2023-03-17 09:27  |  발행일 2023-03-17 제38면
한국 세계식량안보지수 113개국 중 '39위'
농업무역 등 관련 분야 낮은 점수대 분포
쌀을 제외한 주요 곡물은 해외 수입 의존
러-우크라 전쟁 여파 식량공급 문제 대두
국가의 안보 '영토주권→생존전략' 재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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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전쟁이 일어난 지 벌써 만 1년이 지났다. 전쟁이 처음 시작될 때만 해도 이처럼 오래 지속될 줄 몰랐다.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는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러시아를 상대로 끈질기게 싸우고 저항했고, 서방의 대러시아 견제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도 변수로 작용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유럽 수출을 중단하는 등 러시아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또한 작년 9월 말에는 러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천연가스 해저 파이프라인인 노르트스트림이 파손되어 대규모 가스 누출 사고까지 일어났다. 그로 인해 유럽 시민은 에너지 부족으로 추운 겨울을 보내야 했다.

우크라이나전쟁의 여파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돈바스지역의 영토분쟁으로 촉발된 전쟁은 에너지, 물류, 운송, 식량 등 세계 경제의 전 분야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세계의 식량창고 혹은 보급소라 불리던 우크라이나가 전쟁에 휘말리게 되자 특히 식량위기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되었다. 식량공급이 부족해지자 농산물 가격이 치솟았다. 이에 각국은 식량위기를 국가 생존의 문제로 보고 자국 중심의 식량보호주의 정책을 실시하는 등 식량안보를 강화하고 있다. 실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곡물 수출이 막히면서 국제 식량가격이 사상 최고치로 폭등했다. 그로 인해 식량자급률이 낮은 아프리카와 중동의 일부 국가에서는 기아와 영양실조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했다. 이처럼 한 나라의 식량안보는 식량자급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독자에게 식량안보란 말은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안보'라고 하면 국가안보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전쟁의 역사를 보더라도 외부의 위협이나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지키는 일은 사람의 생명과 공동체의 안전과 직결된다. 근현대의 역사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나라의 안보를 지키지 못해 일제의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을 겪은 뼈아픈 경험이 있다. 국권침탈과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었기 때문일까. 우리는 유독 '국가'와 '안보'에 민감하다.

남북이 서로 총구를 겨누고 있는 현실에서 국가안보는 개인의 생명과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이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형극의 고통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먼 나라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전쟁에서 알 수 있듯이 안보는 에너지·환경·식량안보 등을 포함한 넓은 개념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사례는 국가안보와 함께 식량안보가 굳건하지 못하면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안위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식량안보란 "식량의 생산 및 재고량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여 국민의 식량을 위협하는 외부의 요인에서 국민을 지키는 일"을 말한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23개국이 수출을 통제하고 단속하는 식량보호정책을 폈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인도와 인도네시아다. 우크라이나전쟁으로 밀가루 가격이 치솟고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자 세계 2위의 밀 생산국인 인도는 밀 수출을 금지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의 주요 수출품인 해바라기씨유 공급 차질로 자국 내 식용유 가격이 급등하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팜유와 관련한 상품의 수출을 금지했다. 이는 식량을 자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무기로 사용하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향후 전쟁은 영토주권 중심의 국가안보에서 식량안보를 비롯한 에너지, 환경 중심의 생존 우선 전략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식량은 인간이 생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먹을거리다. 먹지 않고 살 수 없는 인간에게 식량은 밥이고, 밥은 생명이다. 우리는 매일 삼시 세끼 밥을 먹으면서도 정작 밥이 얼마나 소중한지, 어디서 오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땀 흘려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고, 돈만 주면 밥을 사 먹을 수 있으니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자신에게 사뭇 진지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식량안보는 튼튼한가?

2022년 기준 세계식량안보지수(Global Food Security Index·GFSI)를 살펴보면, 총 113개국 중에서 대한민국은 39위다. 핀란드(1위)·아일랜드(2위)와 같은 최상위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이웃 국가인 일본(6위)·중국(25위)보다도 순위가 한참 떨어진다. 세계식량안보지수는 경제성·유효성·품질 및 안전·지속가능성 및 적용의 네 개 항목을 평가하여 총점을 매긴다. 1위 핀란드의 총점 83.7점과 견주어 보면, 대한민국은 70.2점에 불과하다. 평가항목 가운데 농업무역, 식량안보 및 정책 공약, 농업의 지속가능성 및 적용에 대한 정치적 약속이 모두 낮은 점수대에 분포하고 있어 특히 우려스럽다.

식량안보에 대한 정부 정책의 부재는 국내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 우리나라의 곡물 및 식량자급률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2020년 기준 곡물자급률은 20.2%로 2016년 23.7% 이후 매년 하락하고 있으며, 같은 기간 식량자급률 역시 50.8%에서 45.8%로 떨어졌다. 반대로 수입률은 2016년 78.4%에서 2020년 80.5%로 증가하여 해외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통계는 우크라이나전쟁 이전의 상황이고, 그 이후의 국제정세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현재 한국의 상황은 보다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쌀을 제외한 거의 모든 주요 곡물을 수입하고 있다는 데 있다. 밀과 옥수수의 국내자급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콩도 8% 미만에 지나지 않는다. 곡물자급률은 갈수록 하락하고 있고, 식량안보지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이 지표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식량안보는 아주 위험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가장 먼저 식량위기에 직면할 위험성이 가장 큰 국가라고 경고한다.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식량의 무기화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국제현실에서 우리의 농업정책은 문제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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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형복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대구를 벗어나 경북 농촌에 가보면 사람을 볼 수 없다.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05곳이 인구소멸위험지역이다. 이 중 경북은 23개 시군 중 78%인 18곳이나 포함되어 있다. 인구가 줄어든 농촌은 머잖아 대한민국의 지도에서 사라질 운명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농촌인구는 날로 고령화되고, 청년인구의 수도권 집중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농업 인구 중 65세 이상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니 한국 농촌에서 세대교체는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농사지을 청년농부가 없는데 식량자급률을 지금보다 어떻게 높여 식량안보를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모든 정책이 도시개발과 발전에 집중되고 있다. 그 결과 청년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어 농사지을 인력이 없어 식량을 자급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또한 지속 가능한 농업정책이 시행되지 못하고, 안정적인 곡물 생산과 공급망을 확보하여 식량안보를 굳건히 하지 않으면 아무리 강성한 군대조직을 갖추고 있다 한들 국가안보를 지킬 수 없다. 식량의 위기는 생존의 위기이고, 식량안보가 곧 국가안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이제라도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농업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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