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사물과 눈을 맞추는 시간

  • 권기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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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13 07:50  |  수정 2023-03-13 07:51  |  발행일 2023-03-13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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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덕〈시인〉

평소 가까이 지내는 문학인이 많지는 않지만 필자에게도 아주 특별한 소설가 A와 시인 B가 있다. 문학적 순결성과 진지함으로 봤을 때 문학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나 담론들이 주를 이룰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물에 관한 탐구 시간이 가장 많다. 예를 들어 각자가 수집한 사물의 성능이나 가격, 디자인, 쓰임새, 에피소드 등을 열렬히 풀어놓는다. 그러다가 배치 공간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그들의 대화에 심취해서 사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서서히 사물이 오히려 나를 불러준다. 필자는 스피커, 인형, 피규어, 손목시계, 머그잔, 텀블러, 슬리퍼, 이어폰, 열쇠고리, RC카, 마이크, 드론 등 세상의 사물들이 말하고 행동하며 노래하는 상상을 해본다.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 사물은 사랑의 눈빛으로 다가온다.

사물도 생명이 있는 걸까? 사물을 개그 소재로 활용한 개그맨도 있었지만 사물은 인간에게 필요한 도구라고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도 소설가는 사물과 사물의 관계를 얽어 이야기를 만들 것이고 시인은 사물의 입을 빌려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할지도 모른다. 문학평론가이자 인문학자인 함돈균은 "시의 사물 이미지를 '문학적으로' 직관하고 '철학적으로' 따지며 역사와 문화의 맥락 속에서 종합적으로 이해해 보는 비평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사물의 철학' 중)으로 사물에 관한 글을 썼다.

때로는 사물을 동심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곳 너머 상상의 세계로 나가게도 해준다. "걸어 다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문들이 보인대요// 시계 문이 걸어가고/ 책 문이 걸어가고/ 음식 문이 걸어간대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시 나오면/ 자신도 어느새 문이 되어/ 누군가 들어간대요// 나는 어떤 문이 될까요?"('걸어가는 문' 중) 필자는 실제로 이 동시를 쓰면서 다양한 문을 오랫동안 응시했고, 제멋대로의 자유로운 상상에 푹 빠졌던 경험이 있다.

사물을 통해 사랑했던 누군가를 떠올린다면 이현승 시인의 '친애하는 사물들' 시 제목처럼 이미 사물 또한 친밀히 사랑하는 존재다. 사랑하는 일은 "내 손으로 새를 보호하는 일이면서 내 손으로부터 새를 보호하는 일"(신형철의 '인생의 역사' 중)일 것이다. 필자는 가끔 사물과 눈을 맞추고 있던 그 소설가 A와 시인 B에게 사물이 새처럼 변했다가 다시 사물로 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사물 또한 기꺼이 그들을 사랑하고 있는 듯 보였다.권기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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