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물멍, 잠시 쉬어갑니다

  • 정연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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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14 07:57  |  수정 2023-03-14 07:57  |  발행일 2023-03-14 제17면

정연지_증명사진
정연지〈작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는 바위에 엎드려 유유자적 물을 응시하는 선비를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 배경을 이루는 이파리와 바위는 간단히 묘사된다. 감상자의 시선을 중앙으로 끌어당기는 그는 온화하고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다. 공자의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물은 동양철학의 궁극적 개념을 설명할 때 상징적 은유로 나타난다.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르면서 방향을 잃지 않는다. 넘치면 평평히 자리를 되찾는다. 또 새롭고 깨끗한 것을 받아들여 교화된다. 그래서 노자는 '도'를, 공자는 '군자'를 물의 속성에 빗대어 설명했다.

산수화는 형상을 빌려 정신을 드러낸다. 즉 풍경을 통해 그림의 주제를 말한다. 시(詩)·서(書)·화(畵) 삼절로 인정받던 강희안이 노자와 장자를 몰랐을 리 없고,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도를 표현해야 한다는 재도적(載道的) 회화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고사관수도'는 사색하는 선비의 자화상이자 사람이 추구하는 이상적 공간의 형상화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인은 군자나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도 여느 시대보다 복잡다단한 삶을 살아가는 까닭에 물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장자는 "성인이 고요히 있는 것은 고요한 것을 좋은 것으로 여겨서가 아니라 만물 중에 마음을 어지럽게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라 했다. 맑은 물이 세상을 제대로 비출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림처럼 하늘이 맑고 바람이 선선했던 어느 날 추억이다. 오랜 친구 내외가 몸이 아파 쉬고 있는 나를 일으켜 근교로 이끌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경산 하양 어귀의 작은 시냇가였다.

경치를 구경하는 동안 친구의 남편은 집을 지었다. 텐트로 만든 임시 거처와 접이식 가구들로 이뤄진 조촐한 살림이었지만 며칠은 머물 수 있을 만큼 세간살이도 꽤 갖췄다. 물가에 저마다의 작은 집을 짓고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고요히 내 눈을 사로잡았다.

물은 하늘과 산과 떠다니는 새를 모두 담으면서도 멈추지 않고 자신의 방향을 지속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흘러가고 소란이 없었다. 내 마음속 불안과 머리를 어지럽히던 걱정도 자연스레 사라졌다.정연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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