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 人사이드] '남명증도가 공인본' 과학적 연구 유우식 박사 "最古 금속활자본은 증도가…국내학계 기존 학설 고집 안타까워"

  • 이효설,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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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10  |  수정 2023-11-29 15:30  |  발행일 2023-05-10 제25면

[토크 人사이드] 남명증도가 공인본 과학적 연구 유우식 박사 最古 금속활자본은 증도가…국내학계 기존 학설 고집 안타까워
유우식 박사가 '남명증도가' 연구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유 박사는 "남명증도가 공인본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로 세계적 공인을 받아 국보 지정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연구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이현덕기자

1972년 프랑스에서 발견된 고려의 직지심체요절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이다.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간행한 금속활자본인 '42행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선다. 이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하지만, 직지보다 138년 앞선 금속활자본이 국내에서 발견됐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바로 보물 제758호인 공인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다. 이런 사실은 지난해 5월과 7월 세계적인 학술지 '헤리티지'(Heritage)에 게재된 한 한국인의 논문 2편을 통해 새롭게 밝혀졌다. 당시 출판한 지 3주 만에 논문 최다 접속 기록을 세울 정도로 세계적인 연구성과로 인정받았다.

이걸 누가 처음 밝혔을까. 경북대 인문학술원의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 중인 유우식 박사다. 그는 반도체 생산 및 측정 장비 개발회사(웨이퍼마스터스)의 대표로 소위 '전자공학' 전공자다. 태생이 이공계였던 그가 뜬금없이 세계 최고 타이틀을 두고 '직지'와 '남명천화상송증도가' 사이에 이어져 온 50년 논쟁을 종식할 수 있는 결정적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국내 학계에서 한바탕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것 같지만 정반대다. 그는 "새로운 논문이 세계에서 인정을 받는데 기존 학설을 고수해 국내에서 공론화가 안 되고 있다"면서 "국내 학계에선 끝내 설득당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성과가 시간이 흘러 묻혀버리는 건 아닐까 우려스럽다. 이미 1970년대 한 차례 거쳐 간 일"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난 3월9일 오후 대구 중구의 한 카페에서 잠시 국내에 체류 중인 유 박사를 만났다.

"첨단 분석기법과 객관적 데이터로
직지보다 138년 앞섰다는 것 규명
네이처지 등재 도전해 공론화 추진
국보 지정·유네스코 유산 등재 목표

해외선 연구논문 관심 끌고 있지만
국내서만 비전공 프레임 씌워 배척
학술지 게재 열세번이나 퇴짜 맞아
천동-지동설처럼 우리 믿음 바뀌길"

▶그간 연구성과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달라.

"2012년 보물로 지정된 공인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웨이퍼마스터스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 픽맨(PicMan)으로 이미지 분석한 결과, 이 판본이 1239년 금속활자로 인쇄된 원간본임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데이터를 통해 밝혀냈다. 종래 세계 최고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알려진 직지(1377년)보다 138년 앞서고 구텐베르크가 1455년에 인쇄한 '42행 성서'보다 216년이나 빠른 금속활자 인쇄물이 남명천화상송증도가임이 밝혀진 것이다."

▶전공인 전자공학과 무관한 금속활자 인쇄 역사에 왜 관심을 갖나.

"전자공학은 돈, 사람, 기술이 다 있다는 동네다. 그런데도 정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지 않고 자기 할 일에만 빠져 발전을 포기하기도 한다. 재료분석 과정에서 면적을 재야 하는데 연구원들이 여전히 도형을 일일이 작게 잘라 면적을 잰다. 불과 얼마 전인 2016년의 광경이었는데 무척 충격을 받았다. 지금 당장 면적을 쉽게 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또 시도하면 만들어낼 수 있지만, 각자가 해야 할 연구를 하느라 수작업으로 면적을 재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이미지 분석 프로그램(PicMan)을 직접 개발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이후 전자공학 전공자가 인문학술원을 찾아가 이미지 분석으로 판본의 인쇄 방법, 순서, 시기를 특정할 수 있다고 설명하자 인문학자들이 잘 들어주지 않았다. '전공도 아닌 사람이 왜?'라며 대화 자체가 어려웠다. 자꾸 찾아가니까 조금씩 문이 열렸다."

▶문화재 국제학술지 헤리티지(scopus 등재지)에 최근 네 번째 논문이 게재됐다는데.

"'먹(잉크) 색상 분석을 통한 중세 한국의 인쇄기술 판정'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얼마 전에 실렸다. 지난해 5월27일 '1239년 한국에서 인쇄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 남명증도가'가 처음으로 게재된 후 이번이 네 번째다. 9개월이란 짧은 시간에 시리즈로 4편의 영문 논문이 출판됐고, 모두 최다 접속 1위 논문에 오른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는 셈이다."

▶국내 학술지 게재는 어떤 상황인가. 쉽지 않다고 하던데.

"국내 성적이 오히려 초라하다. 논문을 계속 제출하고 있지만, 무려 열세 번째 거부당했다. 딱 4편이 국내 학술지에 게재됐다. 서지학(書誌學)계에서 내용을 보지도 않고 딱 잘라 '이건 아니다'라는 식이다. '비전공자가 뭘 모르고 하는 소리'로 치부하고 귀를 열지 않는다. 일부에선 '계속 도전해도 안 될 것'이란 말들도 한다. 마음이 아플 정도다."

▶네이처지 등재도 추진했다는데.

"윤재석 경북대 인문학술원장 도움을 받았다. 채택률이 5% 정도로 꽤 낮아 등재가 쉽진 않다. 등재 자체보다는 공론화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내 학계 반발이 심한데, 어렵지 않나.

"가장 어려운 질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내 생각엔 어린아이들의 질문이다. 아이들은 정말 궁금한 걸 묻는데, 이 물음을 받는 어른들은 말문이 막힌다. 막상 무리 없이 설명하려면 잘 안 된다. 그러니까 '그것도 몰라' 혹은 '그건 몰라도 돼'라고 말을 잘라버린다. 그 아이에게 '그건 이렇단다'라고 설명해줘야 하는데 말이다. 이처럼 국내 학계가 기존 연구 결과와 지식만을 참고할 뿐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의견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색안경을 끼고 있다. 내가 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다른 주장을 하니까 전문가들이 '그건 틀렸다'고 답을 정해놓고, 기존 입장을 대변한다. 틀린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데 자신들의 논리를 설명하고 '학계에선 그게 객관'이란 주장만 반복한다. 끝까지 기존의 객관을 고수하겠다는 거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왜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뀌었을까. 인간들이 다르게 느끼는 건 없잖나. 우리의 믿음이 지동설로 바뀌었기 때문에 바뀐 것이다."

▶전통적 기록문화유산의 감정 방법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서지학계가 이공계의 최첨단 분석 기법을 동원한 연구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육안에 의한 주관적 판본 분석에 크게 의존해왔다.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정말 안타깝다. 현재로선 서구 학계로부터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이를 최대한 공론화하는 데 급선무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 공인본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로 세계적 공인을 받아 국보 지정은 물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날을 기약하며 연구에 매진하겠다."

▶최근 희망적인 소식도 들린다. 한 유튜브에서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가치에 대해 알렸다는데.

"공개한 지 하루도 안 돼 7만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가히 폭발적인 관심이다. 여론이 한 번 더 환기되길 바란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포용하고 더 정확하게 연구해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유튜브 구독자들의 주된 여론이었다. "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공인본=보물 제758호. 송나라 승려 법천의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주자본으로 증조해 1239년에 번각한 불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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