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명동 프린스호텔 '소설가의 방'에서

  • 박지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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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16  |  수정 2023-03-16 08:17  |  발행일 2023-03-16 제14면

[문화산책] 명동 프린스호텔 소설가의 방에서
박지음〈소설가〉

명동은 조선시대 명례방에서 유례한 이름이다. 내가 명동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봄이 오는 명동 한복판에 앉아 이 글을 쓰기 때문이다. 명동의 프린스호텔에서는 '소설가의 방'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작가들이 한 달씩 머무르면서 창작을 할 수 있게 '방'을 내주는 것이다. 나는 매일 명동의 길을 걸어 볼 수 있는 행운까지 얻었다.

어느 날은 명동성당까지 걸어 보았다. 성당 근처 공원에 명동에 관한 역사가 새겨져 있었다. 조선 시대 명동에는 조선 시조 최고봉 윤선도 선생이 살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이회영, 이시영 형제가 가문의 재산을 처분해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또한, 예술가들이 모이던 낭만의 도시였다. 예술가들의 벨 에포크(La Belle Epoque)가 있다면, 1930년대의 명동이 아니었을까. 문학인들이 모였다는 '모나리자' 다방, 화가들이 모였다는 '금꿩다방', 연극인들이 모였다는 '은하수다방'이 있었다고 한다. 그 시대를 상상하며 눈을 감으니 나는 모나리자 다방에서 시인 '김수영'과 만나고 있었다.

나는 명동에 머물면서 좋은 기운을 받고 매일 설레며 눈을 뜬다. 세상의 좋은 기운이 다 나한테 몰려오는 봄날 같다. 글을 쓰다가 늦게 잠들어도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하루는 남산에 올라갔다가 시각장애인 마라톤 선수들을 보았다. 자원봉사자와 손목을 묶고 뛰고 있었다. 그들이 뛸 때 내쉬는 숨이 남산의 새싹들을 톡톡 틔워 내는 것 같았다.

나는 남산에서 내려오다가 길을 잃어 '필동'까지 갔다. 필동은 조선시대에 붓을 팔던 동네였는데, 지금은 화가들이 모여서 골목에 그림을 그려두었다. '필마르트'라는 단어를 그날 처음 알았다. 인쇄소가 돌아가는 골목을 보다가 천천히 걸어서 돌아왔다. 또, 어느 날은 남산을 오르다가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그곳에 '서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가 있었다. 위안부 강제 동원에 관해 최초로 증언을 나섰던 김학순 할머니의 동상과 한국, 중국, 필리핀 소녀상이 있었다. 나는 소녀들의 손을 나란히 잡아보면서 그 손의 감촉을 오래 내 몸에 기억하리라, 다짐했다. 명동에 있는 한 달 동안 매일매일 길을 잘못 들어야지, 마음먹은 날이었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보이지 않는 후원자가 단지 좋은 글을 쓰라고 나를 먹여주고 재워준다. 나는 1963년 명동역에 들어선 프린스호텔의 창립자를 모른다. 그분이 왜 이다지도 아름다운 마음을 품었는지. 그러나 꼭 좋은 글을 써서 보답하리라, 다짐한다. 명동이 나를 지지하니 내가 글을 쓰는 일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조선의 윤선도 선생이 되어서 읊조려 보는 봄날이다. 박지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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