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별이 빛나는 밤에

  • 정만진 소설가
  • |
  • 입력 2023-03-17  |  수정 2023-03-17 08:25  |  발행일 2023-03-17 제16면

[정만진의 문학 향기] 별이 빛나는 밤에

2017년 3월17일 세인트루시아가 낳은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데릭 월컷이 타계했다. 세인트루시아는 면적이 제주도의 3분의 1밖에 안 되고 인구가 18만여 명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이렇게 작은 섬이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을 배출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우리나라는 인구가 5천만이나 되는데…. '가방 크다고 공부 잘하나?'란 농담이 어쩌면 진리인지도 모른다.

2008년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미국에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인종 간, 문명 간, 종교 간 화해와 통합을 기원한다!" 오바마 당선 소식을 듣고 데릭 월컷이 밝힌 소감이다.

월컷은 짧은 소회를 남기는 데 그치지 않고 영국 '더 타임스'에 축시도 발표했다. 월컷은 먼저 "동틀 녘 밀짚모자에 덧옷을 걸친 젊은 니그로"는 우리 시대의 "혼란 속에 떠오른 하나의 징표"라고 읊었다. 그 니그로가 앞으로 나아가니 군중은 "노새가 갈라놓은 밭고랑처럼 나뉘어/ 자신들의 대통령을 향해 갈라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얼마나 "믿기 어려운 예언의 징표"인가!

시 제목이 '40에이커의 땅'이다.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 해방된 흑인 노예들에게 40에이커의 땅과 노새를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링컨이 암살당한 후 그것들을 다시 회수해 버렸다. 그런 참담한 삶을 살았던 조상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월컷의 시에서 "잊히지 않는 목화 머릿결 조상들을 위해 밭을 가는 젊은이"는 오바마이다.

물론 오바마는 "비탄의 땅, 린치의 나무, 토네이도의 검은 복수를 넘어"서려는 마음으로 밭을 간다. 오바마는 "동틀 녘 찾아오는 선명한 빛이 밭에 줄을 그으면/ 밭고랑이 씨 뿌리는 이를 기다릴 그날까지" 성심을 바쳐 일할 터이다. 이는 오바마가 화해와 통합의 지도자가 될 것임을 월컷이 확신한다는 뜻이다.

월컷은 '캐스트리스 항구에 닻을 내리다'에서 "하늘의 별들이 아직 젊을 때/ 나는 당신만을, 그리고 온 세상을 사랑했습니다"라고 노래했다. '당신'은 나의 개인적 사랑, '온 세상'은 인류에 도움이 되려는 나의 사회적 사랑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1969년 3월17일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방송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한국의 정치인은 '입만 벌리면' 화해와 통합을 외쳐왔다. 그러나 하나같이 정치적 목적의 수사에 불과했다. 금수강산 밤하늘에 별은 언제나 떠오르려나? <소설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