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사람다움의 어떤 방식들

  • 권기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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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20 07:47  |  수정 2023-03-20 07:50  |  발행일 2023-03-20 제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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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덕 (시인)

"사람이야말로 절경이다. 그래, 절경만이 우선시가 된다. 시, 혹은 시를 쓴다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결국 사람 구경일 것이다." 고인(故人)이 되신 문인수(1945~2021) 시인의 시집 '배꼽'(2008)에서 '시인의 말' 부분이다. 대구의 선배 시인이자 가장 인간적인 따뜻함을 베풀어 주셨던 선생님이 그리워 가끔 자전거를 타고 시인이 살던 동네를 배회하곤 한다. 봄이 왔으니 어쩌면 시인의 집 맞은편 담벼락에는 개나리꽃이 환하게 폈을지도 모르겠다.

절경을 찾아 일부러 먼 거리를 나서지 않더라도 눈길 가는 곳이 있다. 바로 편의점이다. 사실 재미있게 읽었던 김호연 소설 '불편한 편의점'(2021)의 영향도 크다. 소설은 편의점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의 삶을 섬세히 엿보게 해주며, 주변 세상을 반추하게 만든다. 시적 소재로 삼을 만한 절경 또한 그런 곳에 있지 않을까? 필자는 동네 단골 편의점에 자주 간다. 절경을 찾기 위해, 컵라면을 먹으면서 랩 하는 중학생과 만나면 일단 경청. 이웃과 만나면 "원 플러스 원 음료수 어때요?", 간혹 재미있는 발상이 떠올라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도 한다.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면 나 자신이 어떤 특별한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욕심보다는 우리의 일상을 잔잔히 담백하게 받아적고 싶어진다. 그런 시를 쓰고 싶어진다. 문인수 시인처럼 말이다. 어쩌면 팬데믹 시대로 인해 더더욱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사람다운 이해와 공감의 방식을 시인은 미리 제시하고 가셨을지도 모른다.

절경을 찾아 걸었던 지난겨울에는 대구미술관도 있었다. 특히 2022년 11월과 2023년 1월 사이에 전시된 유근택 화가의 '또 다른 오늘'(2021~2022·한지에 수묵채색·153점 설치) 작품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화가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병원에 계신 아버지께 어떤 '대화'의 방식을 생각해 냈다.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사진 형식으로 매일 병원의 간병인 휴대폰으로 전송하는 것이었는데,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담긴 풍경들은 '우리가 왜 그리고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또한 못다 한 말들을 남긴 채 이 세상을 건너간 우리네 아버지 생각에 필자는 전시된 그림들 앞에서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줄 몰랐다. 이 화가가 가진 대화의 방식은 정서의 감동과 함께 사람다움을 환기하는 매개가 된 것 같다.

하루를 마친 오늘, 산책길에서 만난 이웃과 편의점에서 '원 플러스 원' 음료로 대화를 해보자. 그러다 고마웠던 누군가를 떠올려 지금 내가 보여주고 싶은 풍경 하나를 스마트폰으로 전송하자. 따뜻한 문장과 함께. 사람다움의 소통 방식으로.

권기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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