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안전문화 정착으로 재해없는 일터를

  • 이동원 안전보건공단 대구광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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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30 06:41  |  수정 2023-03-30 06:58  |  발행일 2023-03-30 제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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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안전보건공단 대구광역본부장)

감염 취약시설을 제외하고는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지만 밖을 나설 때는 마스크를 챙긴다. 거리 두기 조치가 해제된 지 1년여가 지났지만, 지하철 '비우기 좌석'에 앉으려다 흠칫한다. 3년간 정부의 코로나 대응 지침을 실천하며 만들어진 개인 공간(Personal Space) 존중과 같은 습관은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렇듯 '문화'는 형성되기까지 일정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형성되면 제법 단단하다.

일하는 사람(근로자·특수형태고용근로자·플랫폼노동자 등)의 안전에 문화가 중요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산업현장에서 안전문화가 제대로 내재화한다면 이는 획기적인 재해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안전은 최우선 가치'라는 인식이 공고해지면 그에 반하는 행동은 주변의 눈총을 받는 사회적인 압박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간 정부는 안전문화 확산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해 왔다. 하지만 '빨리빨리 문화'와 생산을 우선시하는 현장의 관행을 바꾸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안전문화가 정착하지 못한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그중 한 가지는 안전의식 고취 활동이 사업장 내 구체적인 '안전행동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지난해 11월 정부가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서는 사업장 내 모든 구성원에게 구체적인 '안전행동' 실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경영책임자는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구축할 것, 다시 말해 '안전보건시스템'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경영책임자의 의무와 맥을 같이한다. 또한 근로자는 안전보건 주체로서 안전보건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중 특히 중요한 점은 '작업 중지 활성화'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근로자의 작업중지)에 명시된 것으로 근로자가 위험한 상황에 놓였을 때 스스로 작업 중지를 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을 근로자가 적극 행사할 수 있게 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제안하자면 산업안전보건법에서의 '위험 기반의 작업중지'는 위험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 근로자의 실천을 담보하기 어려운 면이 있으므로 '안전 기반의 작업중지'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이미 안전 선진국의 많은 기업이 '안전 기반 작업중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작업 전 근로자가 안전사항을 확인·판단해 모든 안전사항이 충족된 경우에만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반대로 단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는다면 작업을 중지한다. 위험이 닥쳐야 작업을 중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안전이 담보돼 있지 않다면 작업을 개시하지 않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은 안전할 권리가 있다. 안전행동을 실천하고 권리를 행사하는 방법으로 '안전 기반 작업중지'는 반드시 정착돼야 할 제도이다. 갈수록 고도화하는 현대사회의 산업재해는 불명확한 의사 전달체계, 불확실한 의사결정 구조 등 갖춰져 있어야 할 안전보건시스템의 미비로 발생한다.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시스템 구축은 필요하며, 그 안전보건시스템의 정상 작동을 위한 안전문화 정착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이솝우화 '해님과 바람'에서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따뜻한 해님이다. 무언가 변화시키고자 할 때는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것이 강압적인 처벌보다 효과적이다. 따뜻한 안전문화의 정착은 근로자의 안전에 대한 인식과 행동을 이끌어 낼 것이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재해 없는 건강한 일터'가 만들어진다.

이동원(안전보건공단 대구광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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