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봄이다, 이제 봄이다

  • 정연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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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21 07:30  |  수정 2023-03-21 07:41  |  발행일 2023-03-21 제17면

정연지_증명사진
정연지〈작가〉

눈 덮인 세상을 뚫고 생명이 피어난다. 언 땅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매화의 생장은 고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선비의 지조와 닮았다. 그래서 매화는 소나무, 대나무와 더불어 세한삼우(歲寒三友)로 불린다.

조선 후기 중인화가 조희룡은 매화그림을 즐겨 그렸다. 추사의 제자인 그는 유배지에서 매화를 그려 서화 수장가 유최진에게 보냈다. 이때 "그림을 걸어두고 보면 나를 보는 것 같을 것"이라는 편지를 동봉했다.

"날씨가 추워진 이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다는 것을 안다.(知松柏之後凋)"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의 발문이다. 추사는 절해고도 제주에서 9년간의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이 그림을 그렸다.

겨울은 춥고 시린 고난의 한때를 상징한다. 방에서 혼자 누군가를 기다리는 외로움의 계절이 겨울이라면 봄은 다르다. 봄은 따뜻하고 밝으며 함께하는 이가 있는 충만한 시작이다. 문학평론가 노스럽 프라이는 "봄은 희극적 구조를 가진다"고 했다.

아직 오지 않은 봄을 상상하는 일만으로도 사람은 겨울로부터 잠시 해방되기도 한다. 민족시인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떠올려 보자. 그는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파란 잔디가 언덕을 덮듯 새 생명으로 가득한 미래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가수 김윤아의 노래 '봄이 오면'도 마찬가지다. 봄이 오면 만물이 깨어나 붉은색, 연둣빛 등 본래의 색을 되찾는다. 다정한 당신과 손을 잡고 들녘과 연못을 향하는 나의 심정은 시름으로 가득 차 있던 겨울과 다를 것이다. 하지만 기타와 처연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여전히 현실이 겨울에 있음을 알려준다. 그래서 노래는 오지 않은 봄을 되뇐다. "봄이 오면, 봄이 오면, 봄이 오면…."

인생의 계절은 자연의 사계와 달리 방향이 일정하지 않다. 겨울 뒤에 꼭 봄이 오는 것도 아니고, 여름 앞에 반드시 봄이 있지도 않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래도 사람은 겨울이면 봄을 기다린다. 계속되는 봄도 없지만 영원한 겨울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춘분이다. 얼음은 깨졌고 곧 하늘이 맑아진다. 온종일 밤과 같았던 겨울을 걷어내고 해가 하루의 절반을 차지한다. 덩달아 꽃도 핀다. "봄이다! 이제 봄이다!"정연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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