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선생님, 비밀인데요

  • 김단희 국악인·서도소리꾼
  • |
  • 입력 2023-03-22 07:31  |  수정 2023-03-22 07:32  |  발행일 2023-03-22 제16면

2023032101000651800027111
김단희<국악인·서도소리꾼>

넷플릭스 영화 '수업시대'는 수천 년 이상 전해 내려온 인도 전통음악인 '라가'를 배우는 24세의 샤라드라는 전통음악가의 고민과 여정을 그리고 있다. 비주류 전통음악을 계승하는 예술가의 길은 고독한 수행자의 길과 다름 없다. 현실적인 것을 뒤로하고 성공을 기약할 수 없는 전통음악의 길로 일생을 바쳐야 하는 전통음악 계승자의 고뇌를 여실히 보여준다.

나라마다 고유의 전통문화가 있고 그 한편에는 전통음악이 있으며 이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인도의 전통음악 '라가'의 문하생인 샤라드, 국악의 '서도소리'의 문하생인 필자를 비롯한 많은 전통음악가들이 대중적인 관심을 크게 얻지 못하면서도 저마다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이유이다.

따뜻한 봄을 알리는 개나리가 만개한 교정은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필자는 7년 차 국악 선생님이다. "국악은 무엇일까요?" 첫 시간, 학생들에게 던지는 단골 질문이다. 몇 년 전 수업 때는 "잘 몰라요"로 일관했는데, 요즘은 "장구" "옛날 노래" 등의 답변이 제법 나오는 것을 보면 국악 수업 효과의 덕을 톡톡히 보는 듯하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전문 예술 강사를 파견하는 사업을 시행하며 소정의 검증과정을 통해 선발된 국악 전공자들이 학교에서 심도 있는 국악 수업을 가르친다.

세대를 불문하고 서양음악의 대가인 베토벤, 모차르트의 이름은 익숙하나 전통음악의 대금 명인 박종기, 판소리 명창 김소희를 모르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게다가 1970년대생 세대까지 배웠던 국정교과서의 오류로 인하여 해금을 아쟁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재는 교과서에 30% 이상이 전통음악을 싣고 있다. 또한 최근 국악교육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국악계의 반발로 무산되었던 일도 있었다.

헌법 제9조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위함일 것이다. 전통음악을 강권해서는 안 되지만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국가 차원의 문제이다. 확고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세계음악을 수용하고 응용해 나간다면 '독창성'과 '확장성'을 동시에 갖추고 문화적 융합의 선순환구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한 학생에게 편지를 받았다. "선생님 비밀인데요, 제가 꿈이 생겼는데 선생님 같은 국악인이 되고 싶어요." 예술행위자이자 예술교육자로서 빛이 보이는 순간이다. 이 학생이 전통음악 계승자의 길을 걷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훗날 서게 된다면 필자보다는 조금 더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단희<국악인·서도소리꾼>

기자 이미지

김단희 국악인·서도소리꾼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