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나는 걸림돌이 되리라

  • 박지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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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23 07:35  |  수정 2023-03-23 07:37  |  발행일 2023-03-23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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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음 (소설가)

동거차도는 전남 진도 서망항에서 배를 한 시간 타고 가면 나오는 섬이다. 지난 주말에 나는 동거차도에 갔다가 목포 세월호 선체 내부를 보는 기행을 촬영팀과 다녀왔다. 나는 진도 출신으로 진도에서 열아홉 살까지 자랐지만, 진도를 다 모른다. 세월호 관련 장편을 쓰는 중 세월호 내부를 보고 싶어서 동행한 여행이었다. 동거차도는 세월호를 인양할 때 유가족들이 인양 과정을 지켜본 섬이며, 문지성 학생이 발견된 곳이다. 나는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와 촬영팀 일행과 동행했다. 동거차도로 향하는 길은 비가 내리고 쌀쌀했다. 동거차도에 도착해 수풀과 대나무숲을 헤집고 가파른 길을 오르자 소녀의 조각상과 학생증이 보였다. 일행은 묵념했고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는 비명을 질렀다. 바다를 향해 지르는 딸을 잃은 아버지의 비명은 일행을 숙연하게 했다.

나는 지난주에 '서울 위안부 소녀상'의 손목을 잡아 보았듯이 소녀의 조각상을 더듬었다. 희생자의 흔적과 조우할 때마다 나는 의문이 들었다. 왜 나는 아픈 일들을 찾아다니며 눈감고 지나치지 못할까. 이 생각을 품고 나는 목포로 향했다. 다음 날은 비는 오지 않았지만, 바람이 불었고 더 추웠다. 세월호 내부는 서늘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서늘함은 날씨에서 오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3년 동안 바다에 잠겨 있던 배는 녹이 슬었고 거대한 따개비 껍데기가 올망졸망 붙어있거나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구르는 따개비 껍데기를 주었다. 따개비는 원래 손톱만 한 크기로 바위에 들러붙어 자란다. 그런 따개비가 돌멩이처럼 커지는 시간이 3년이었다. 나는 따개비 한 개를 주머니에 넣었다. 아픈 장소의 돌멩이라도 쥐고 있으면 소설이 잘 써지는 것은 나만의 비법이다. 일행 중 한 분이 말했다.

나는 걸림돌이 되리라.

촬영팀과 동행한 분들은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했던 사람들이다. 그분의 말은 내가 내내 품고 다니던 의문의 답이었다. 작가인 내 앞에 희생자의 흔적이 나타나는 것은 내가 걸림돌이 되길 바라서가 아닐까. 문학이라는 것은 현상의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제도권에서 덮고 지나가려는 사건들에 끝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니 권력의 쪽에서 보면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분에게 그 말을 내가 써도 괜찮냐고 물었다. 그분은 흔쾌히 수락했다. 작가는 권력과 제도권의 디딤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언제나 걸림돌이 되어야만 한다. 나는 주먹만 한 따개비를 손에 쥐고 4월의 아이들을 떠올렸다.

박지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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