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 불편한 캐나다, 너무 편리한 한국?

  •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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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23  |  수정 2023-03-23 06:55  |  발행일 2023-03-23 제22면
기본 중시한 단계적 진료체계

캐나다의 무상 의료 시스템

빠르고 편리한 한국과 대비

기본 무시·과도한 수익 추구

한국 의료서비스 개선해야

[더 나은 세상] 불편한 캐나다, 너무 편리한 한국?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캐나다에서 처음 병원에 갔을 때, 의사를 만나고 습관적으로 지불하러 접수창구에 갔더니 "You're good to go(가셔도 됩니다)"라고 했다. 그냥 가면 되냐고 한 번 더 묻고 나왔다. '무상의료'라는 걸 처음 체험해본 순간이라, 병원 갔다 돈 안 내고 나오는 게 어색했던 그 느낌을 기억한다. 물론, 모든 의료가 무료는 아니라 치과와 안과 진료는 포함 안 되고, 좋은 직장일수록 직장을 통해 extended health care라고 부르는 추가보험 혜택을 더 누릴 수 있다. 내 경우엔 1년에 두 번 치과 검진(한국에서 흔히 스케일링이라고 부르는)과 대부분의 치과 진료를 무료로 받을 수 있고, 주치의 처방이 있는 대부분의 약값도 무료이다. 일반 '무상의료'에도 1년에 한 번 건강검진이 포함되어 있는데, 의료비용이 비싸니 검진을 보험화해서 예방하는 의료정책을 펼치는 듯하다.

아프면 보통 'family doctor'라고 부르는 주치의를 먼저 만나고, 주치의의 판단에 따라 전문의를 볼 수 있는데 급하거나 심각한 증상이 아니라면 몇 개월(혹은 그 이상) 기다릴 수도 있다. 건강검진 때도 주치의와 기본적인 문진을 하고, 혈액검사 포함, 초음파 등 추가검사가 필요할 경우 주치의 처방전을 받아 검사별로 별도의 장소에 따로 예약하고 방문해야 한다. 그러다가 한국의 건강검진을 가면, 그야말로 신세계가 펼쳐진다. 같은 건물 1층에서 3층 정도 몇 번 오르락내리락하면, 캐나다에서라면 몇 주 걸렸을 일들이 반나절에 휘리릭 끝나고 병원 옆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갈 수 있다. 전문의를 바로 볼 수 있는 것도 편리하고, 병원들이 가까이 있어 코로나 예방접종 때도 5분 거리의 동네병원에 예약도 없이 걸어가며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또 그런 빠르고 편리한 양질의 서비스가 매우 싸다. 꽤 좋은 직장보험이 있는 미국 지인의 경우, 혈액 검사 후 결과를 듣기 위해 의사 만나는 데만 20만원 이상이라고.

그러나 동시에 한국의 '빠름'과 '편리함'은 '기본'을 무시하고 건너뛰기에 가능한 경우가 많다. 한국 병원들의 붐비는 오픈된 공간에서는 사생활보장이 힘들고, 사람이 하는 서비스가 빠르고 싸다는 건, 그 일을 하는 사람들, 특히 하위직급 노동자의 노동 가치가 높이 평가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사람의 가치가 높지 않은 사회라는 건, 과연 그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일까? 또한 가벼운 감기 정도는 약 대신 레몬차나 휴식을 권하는 캐나다에 비해, 한국에서는 약간만 불편해도 병원 가서 각종 비싼 '주사 한 방' 맞고, 몸에 해로울 수도 있는 검사들을 수시로 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싸고 편리하니까. 또 병원의 입장에서는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다른 수익 모델이 필요하니까.

살아보니, 불편함이 꼭 나쁘지도, 편리함이 꼭 좋지만도 않고, 모든 시스템은 각각 장단점이 있더라. 복지정책으로 부러움을 사는 캐나다지만, 평범한 중산층도 "세금 내려고 돈 버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높은 세금을 대가로 치른다. 다만 한국의 경우 '빠르고 싸고 편리한' 강점은 충분히 알렸으니, 이제는 그간 소홀했던 기본에 충실할 시간이 아닐까? 가장 쉬운 사랑이 '인류애'라는 말처럼, 추상적인 정의와 선을 옹호하기는 쉽다. 우리는 공공의 선을 위해 나와 내 가족의 일상의 불편과 불이익을 얼마나 감수할 수 있는가?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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