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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
1933년 3월24일 독립지사 김중건이 44세 장년에 별세했다. 짐작되겠지만 그의 죽음은 순국이었다. 만주 일원에서 농민운동과 무장투쟁을 병행하던 소래(笑來) 김중건은 그렇게 타계했다. '웃으며(笑) 온다(來)'는 아호와 반대로 그는 눈물겹게 세상을 떠났다.
김중건은 20세이던 1909년 동학에 입교했다. 일진회가 '한일합방 상주문'을 발표해 일본의 조선 점령을 촉구하자 천도교월보에 '토일진회'라는 논설을 써서 성토했다. 하지만 이듬해 결국 나라는 망했다. 이때부터 김중건은 천도교 교단 개혁운동을 펼쳤다. 1914년 북간도로 망명해 민족교육운동에 매진하다가 투옥되고 1920년 사상 단체이자 무장독립운동 결사인 대진단을 조직한 뒤 잡지 '새바람'을 간행·배포하다가 또 투옥되었다. 1929년에는 북만주 황무지에 어복촌을 건설했다. 농사와 군사훈련을 병행한 어복촌은 '공동 생산 공동 분배'의 이상적 농촌공동체였다. 그는 어복촌 농병들을 이끌고 일제와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1978년 3월24일 청록파 시인 박목월이 세상을 떠났다. 박목월은 '이별가'에서 "저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 내가 있는 이리로 오고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네가 있는 저편 강기슭으로 간다고 했다. 그러나 "뭐락카노, 뭐락카노"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인연이라 했다. "이승 아니면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인 것이다.
박목월 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한 편을 든다면 '나그네'가 합당할 듯하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가 전문이다. 박목월의 '나그네'는 어디로 가는 중이었을까.
김중건의 어복촌 같은 공동체가 목적지였으리라 여겨진다. 고기(魚) 배(腹) 안과 같이 작고 따뜻한 마을(村) 어복촌(魚腹村)은 노자의 '소국과민'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소국과민(小國寡民)은 나라(國) 규모가 작고(小) 백성(民) 수가 적을수록(寡) 살기 좋은 이상국가가 건설된다는 뜻이다.
나라가 커지면 권력도 비만이 된다. 자연히 다수가 소외되고 비인간화된다. 스위스 조각가 자코메티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했다. 하지만 기원전 4∼5세기 노자도, 1889년생 김중건도, 1915년생 박목월도 모두 '나그네'가 되어 갈밭을 건넜지만 '소국과민'한 어복촌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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