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 심장소리] '세컨드 마더'(안나 무이라에르트 감독·2015·브라질), 예리하고 따뜻한 시선의 브라질 영화

  •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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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31 09:12  |  수정 2023-03-31 09:15  |  발행일 2023-03-31 제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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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하면 축구와 삼바, 카니발부터 떠오른다. 브라질 영화는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에 빛나는 월터 살레스의 '중앙역'(1998)이 브라질 영화였다.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 '두 교황'의 감독이 브라질 출신인 건 뒤에 알았다. 브라질 영화계의 현주소는 어떨까? 아주 오랜만에, 좋은 영화라고 입소문이 난 '세컨드 마더'를 찾아봤다. 브라질의 현재가 들어있는, 계층 간의 갈등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기생충'과 닮았으나, 마지막이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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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주인공 발은 보모다. 상파울루의 부잣집에서 일한다. 주인집 아들을 돌보느라, 고향에 있는 딸은 어머니 얼굴도 잘 모른다. 발의 딸 제시카는 대학시험을 위해 상파울루에 온다. 보모이자 입주 가정부로 있는 엄마와 지내며, 주인집 식구들과 여러 갈등을 겪는다. 제시카는 똑똑하고 당당하다. 발은 친딸보다 주인집 아들 파빙요를 더 아끼는 것 같다. 파빙요도 친엄마보다 발을 더 따른다. 발은 제시카와 파빙요, 둘 다에게 '세컨드 마더'인 셈이다.

당당한 제시카를 보는 엄마는 불편하다.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 딸, 주인아저씨의 호의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것을 보며 어쩔 줄을 모른다. 하지만 교육을 제대로 받은 똑똑한 딸은 엄마와 전혀 다른 세대다. 주인집 편만 드는 엄마를 보며 화도 낸다. 보는 이가 무안할 만큼 당당하다. 이 영화가 돋보이는 지점이다. 평화롭고 안정적이던 구도는 제시카의 등장으로 깨진다. 마침내 엄마의 세계관에도 균열이 일어난다.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연기상을 받은 엄마 역 헤지나 카제의 연기가 뛰어나다. 영화의 감동은 그녀 몫이 크다. 보모의 손에 컸던 경험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감독의 시각이 예리하면서도 따뜻하다. "사회 구조적 모순을 단호하게 고발한 뒤 포근하게 껴안는다"는 평 그대로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에 브라질 대표로 출품되었고, 미국비평가협회 외국어 영화 톱5에 들었다. 예테보리국제영화제 관객상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영화 '기생충'을 보고 절망했던 생각이 난다. 서늘하고 아팠다. 지하에 갇힌 아버지를 구출할 방법은, 영원히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가슴 깊이 상처를 입었다. 감독이 의도한 바였다. '기생충'의 순한 맛이라 할 '세컨드 마더'를 보고는 한 가닥 희망이 생겼다. 상식과 질서를 뛰어넘는 기적 같은 일이 세상에는 엄연히 존재하니까. 어쩌면 그 희망은 사람이고, 제시카처럼 당당하고 똑똑한 젊은 세대다. 우리 기성세대의 눈에는 되바라져 보이는 젊은이들이다. 우리가 기존의 세계관과 가치관만 고집하지 않아야 미래가 있다.

딸의 시험 합격에 "너무 행복해서"라며,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주인의 풀장에서 첨벙거리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독특한 구석이 있는 브라질 이야기지만, 결국 모두가 공감할 이야기인 것이다. 역시 '기른 정'보다 '낳은 정'인가 싶지만, 친자식이 아닌 파빙요도 진심으로 사랑하며 키웠다. 그게 그녀의 힘이다. '세컨드 마더'가 아닌 첫째 엄마, 진짜 엄마다. "아이 키우는 건 내 전문이지"라고 말하는 것 같은, 그녀의 따뜻한 미소를 영화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란다. 보는 내내 조마조마하지만 끝내 미소 짓게 만드는, 예리하고도 따뜻한 영화다.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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