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같은 그의 노래를 듣노라면 신사의 잔향이…

  • 박미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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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31  |  수정 2023-03-31 09:03  |  발행일 2023-03-31 제38면
[박미영의 연필의 무게 걸음의 무게] 캐나다 출신 싱어송라이터 '레너드 코헨',
詩같은 그의 노래를 듣노라면 신사의 잔향이…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Tous les matins du monde)'을 쓴 파스칼 키냐르는 다른 책 '음악 혐오'에서 이렇게 썼다. '그들과 그들의 음악이 천사가 되어 돌아온다. 그들의 이름을 천사 명단에 등재한다. 고요히 호명하면 돌아와 노래의 등불을 밝혀주는 천사들. 레너드 코헨, 존 웨튼, 레미 킬미스터, 크리스 코넬, 체스터 베닝턴. 그들은 떠나지 않았다. 그들의 노래를 듣는 우리가, 매일, 이곳에서 쓰러진다. … 소리와 언어는 들리는 것이지 만지거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래가 감동을 줄 때, 그것은 대상을 1) 꿰뚫고 2) 죽인다.'

프랑스 68세대 파스칼 키냐르는 모든 예술 장르 중에서도 음악을 가장 사랑한 듯하다. 그는 떠들썩한 도시의 소란한 삶과 소음을 현대의 끔찍한 음악이라 규정짓기도 하고, 나치가 강제수용소 유대인 학살에 음악을 이용한 것엔 몸서리치기도 했다. 음악이 왜곡되고 변질되는 것을 그 무엇보다 혐오했던 그가 천사 명단에 등재한 레너드 코헨을 나는 20대 초반에 처음 들었다.

저음의 목소리로 사랑·평화 노래한 음유시인
한 곡의 가사 쓸 때 2만편의 詩 습작할 정도
가치 인정받아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기도
'I'm your man' '할렐루야' 등 명곡 남겨


詩같은 그의 노래를 듣노라면 신사의 잔향이…
68세대와는 같은 듯 다르게 한국의 86세대들이 뜨거운 신념으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지거나 또는 회색지대에 은둔하던 때였다. 당시 나는 그 어디에 속하지도 무엇도 되고 싶지 않던 짓눌린 청춘기를 보내고 있었다. 철저히 무화되고 싶단 생각으로 한 톨 습기 없는 레너드 코헨의 건조하고 음울한 송가에 하릴없이 영혼이 휘젓기던 시절이었다. 그마저 1988년 발표된 'I'm your man'이 전 세계적 히트를 치고 코미디 프로그램 BGM으로 뒤덮이자 거짓말처럼 그 열망은 싸늘히 식고 말았다.

2016년 11월7일, 향년 82세로 세상을 떠난 레너드 코헨은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태어났다. 리투아니아계 유대인으로 어릴 적부터 시나고그에서 공부했고, 의류사업을 크게 하던 아버지가 9세 때 사망하자 학생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활달했던 소년은 스페인 시인 로르카에 경도되어 감수성 가득한 시를 쓰고 작곡을 하는 청년이 되었다.

유대인답게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불어에도 능통해 맥길대 영문과를 다니던 1956년엔 시집 '신화의 비교(Let Us Compare Mythologies)'를, 1963년엔 장편소설 '내가 좋아하는 게임(The Favourite Game)'을 냈다. 1967년 소설 '아름다운 패자(Beautiful Losers)'로 캐나다의 제임스 조이스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는 늘 가지고 다니던 노트에 무언가를 쓰는 사람이었다. 이것은 밥 딜런, 폴 사이먼, 조니 미첼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음유시인으로 이름이 높던 60년대부터 말년까지 한결같았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세계로 다가가기 위해서다.' 진정 그는 뼛속 깊이 내려가 심연에 닿을 때까지 쓰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곡을 만들 때 한 편의 가사를 쓰는 데 2만편의 시를 쓸 정도이니 그 문학성은 또 당연히 뛰어날 수밖에. 함께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었던 밥 딜런은 그를 '블루스의 카프카'로 칭했다.

詩같은 그의 노래를 듣노라면 신사의 잔향이…
박미영 시인
1960년 할머니의 유산으로 그리스 이드라섬에 방이 다섯 개 딸린 하얀 3층집을 사 글을 쓰고 작곡을 하던 때 노르웨이 출신 배우지망생 마리앤 일렌을 만난다. 그녀는 작가였던 남편과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섬으로 사랑의 도피를 해 아들 하나를 낳고 살았는데 코헨의 여자친구가 떠나버린 터였다. 섬에 남은 둘은 사랑에 빠졌고 그다지 긴 시간을 함께 하진 못했지만 그녀는 그의 영원한 뮤즈가 되었다.

1967년 첫 앨범 'Songs of Leonard Cohen'에 수록된 'So long Marianne'은 마리앤과 헤어지면서 만든 노래다. '마치 내가 십자가인 것처럼 당신은 내게 매달렸어요. 절벽 끝에 서 있는 날 당신의 거미줄로 감아 돌에 묶어주는군요.' 저음의 목소리와 나일론 현을 장착한 클래식 기타 그리고 그리스식 코러스가 보컬을 돋보이게 하는 아름다운 이 곡은 '이제는 때가 왔어요. 마리앤'으로 끝을 맺는다.

대표곡 'Bird on the wire'가 수록된 1969년의 2집 'Songs From A Room'은 섬에 가설된 전깃줄에 앉은 참새를 보며 마리앤이 권해 만든 앨범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이 흘러 2016년 마리앤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먼 곳에서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항상 당신의 아름다움과 현명함을 사모했다는 것은 잘 아실 테니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저 당신의 편안한 여정을 바라는 바입니다. … 잘 가요. 나의 오랜 벗' 몇 개월 뒤 그도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1970년대 동시대 많은 뮤지션이 그랬던 것처럼 술과 마약, 여자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그도 겪었다. 한때 불교에 심취해 6년간 수도자 생활을 할 정도로 빠져들기도 했다. 쾌락과 고통, 사랑과 아픔, 황홀감과 타락의 심연을 통해 사랑과 증오, 성과 정신, 전쟁과 평화, 황홀과 절망을 담아낸 그의 노래는 우리나라에는 극소수에게만 알려졌지만(유신시대 검열에 걸려 13년 동안 듣지 못한 곡들도 있다), 서구에서는 싱어송라이터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971년 발매된 세 번째 앨범 'Songs Of Love And Hate'에 수록된 'Famous blue raincoat' 또한 명곡이다. 한 여자를 둔 삼각관계 속에서 다른 남성을 'My brother, my killer'라 부르며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린 곡인데, 마지막의 'Sincerely, L. Cohen'이라는 읊조림이 유독 긴 자국을 남긴다. 12월 추운 뉴욕의 새벽에 홀로 깨어 푸른 레인코트를 즐겨 입는 연적(戀敵)에게 보내는 편지라니.

그의 노래는 거의 모두 명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helsea Hotel #2'는 포크록의 성지가 된 뉴욕 맨해튼 첼시 호텔에서의 딜런 토머스, 재니스 조플린, 밥 딜런, 지미 헨드릭스 등 수많은 예술가의 족적이 느껴지는 곡이다. 그 외에도 영화 '슈렉'에 삽입된 '할렐루야(Hallelujah)', 사회와 종교적 문제,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와 병든 현실에 일침을 가한 'Everybody knows' 또한 압권이다.

2008년 여름, 믿었던 매니저가 전 재산을 횡령해 무일푼이 된 늙고 초라해진 모습으로 73세의 그가 무대 위에 섰을 때 은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컴백 쇼라는 비아냥마저 일었다. 하지만 그가 노래를 시작하자 관객들은 열광했고, 기자들은 '기절할 만큼 멋진 공연'이란 기사를 타전했다. 이후 2년간의 월드 투어 동안 그는 5천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았다.

마지막으로 만든 14집의 타이틀 곡 'You Want It Darker'는 2013년 월드 투어를 마친 후 앓게 된 척추다중골절로 은둔하다시피 한 LA 자택에서 작업한 것이다. 마치 자신의 앞날을 준비하듯 단호하고 세련된 그의 메시지(이제 갈 준비가 되었다. I'm ready, my lord)는 영혼을 울리는 듯하다. 이 또한 BBC 인기 갱스터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에 쓰이며 이보다 어울리는 곡이 없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2003년 캐나다 정부의 최고 명예 훈장을 받았고, 2008년 마돈나 등과 함께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17권 시집과 소설로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왕세자상 등을 수상했다. 캐나다 몬트리올 그의 집과 무덤에는 아직도 꽃이 놓이고, 미술관과 빌딩 외벽에는 페도라를 쓴 그의 모습을 그린 벽화가 그려져 있다. 비가 내리는 밤, 다시 그의 음악을 듣는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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