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샴페인·'킹스맨' 위스키·'아이언맨' 와인의 숨겨진 진실

  • 이재훈 영진전문대 호텔항공관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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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31  |  수정 2023-03-31 09:03  |  발행일 2023-03-31 제37면
[이재훈의 트렌드 스토리] 영화 속 술 이야기

007 샴페인·킹스맨 위스키·아이언맨 와인의 숨겨진 진실

전 세계 영화계를 들썩였던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항상 '봉테일'이라는 수식어가 함께 한다. 봉테일은 봉준호 감독의 성씨인 '봉'과 '디테일(detail)'을 합한 단어로, 봉준호 감독이 영화 곳곳에 숨겨 놓은 디테일이 매우 섬세함을 보여준다. 이처럼 영화 속의 디테일은 영화의 품질을 대폭 상승시켜 준다. 마찬가지로 영화 속의 술들은 단순한 소품 역할 이상의 상징과 정체성을 만들어준다.

영화 '007'은 1962년 제1편 살인번호(Dr No)가 소개된 이후 6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전설적인 첩보스릴러 영화로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영화 007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본드 걸만큼이나 유명한 술이 샴페인 동페리뇽이다. 007영화 세 번째 작품인 골드핑거(1964년)에서 제임스 본드는 동페리뇽 샴페인을 가리켜 53년산 동페리뇽은 비틀스 음악만큼이나 우아하고 요란한 술이라고 표현했다. 그 이후 샴페인 동페리뇽과 쌍벽을 이루는 볼링저(Bollinger) 샴페인은 2012년 007 스카이폴까지 무려 13편의 영화에 등장한다.

본드걸만큼 유명한 샴페인 동페리뇽
킹스맨 주인공 최후의 싸움 시작 전
'나폴레옹 브랜디 1815'로 몰락 암시

희소가치 높은 와인 '헌드레드 에이커'
아무렇지 않게 마시는 재력가 스타크



왜 이렇게 유명한 영화에는 세계적인 명품 와인들이 등장할까. 술을 만들고 연구하는 우리는 명품 와인(술)에 의미 부여를 하고 깊이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Kingsman: The Secret Service, 2015)에는 여러 명품 와인과 위스키들이 등장하는데, 와인 이름의 유래와 해당 와인 이름에 붙는 숫자를 살펴보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해당 장면의 기저에 깔려 숨겨진 내용을 알 수 있다. 킹스맨 시리즈의 킹스맨 에이전트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전쟁을 막기 위해 창립된다. 평소에는 평범한 양복점(테일러숍)이며, 킹스맨 요원들의 코드네임은 '아서 왕 전설'에 등장하는 원탁의 기사들의 이름에서 차용되어 나온다.

극중 인물인 랜슬롯은 죽기 전에 '달모어 62(Dalmore 62)'를 마신다. 영화 첫 장면에서는 달모어 1962가 나오지만, 사실 달모어에서는 1962년산 위스키가 출시되지는 않았다. 달모어 62는 1868년, 1876년, 1926년, 1939년에 증류해 숙성시킨 4통의 원액으로 딱 12병만 생산된 위스키이다. 이때 달모어 62는 4가지 원액 중 가장 최근인 1939년 원액이 사용되어 62년에 숙성되었다 하여 '62(년)'로 표기되었다. 딱 12병만 생산된 달모어 62의 '12'는 '최후의 만찬'의 열두 제자와 열두 명의 '원탁의 기사'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나폴레옹 브랜디 1815(Napoleon Brandy 1815)'는 킹스맨의 가장 중요한 술로 알려져 있다. 요원 중 한 명이 죽었을 때 추모하기 위한 추모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브랜디'란 포도주나 사과주 등의 과실주를 증류하여 만드는 증류주의 일종이며, 풍부한 향을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용하는 과실에 따라 맛이나 향의 차이가 크고, 명칭 또한 달라진다. 사과를 사용한 브랜디는 '칼바도스(Calvados)', 특정 포도 품종을 사용해 프랑스 서남부 코냑 지방에서 만들어진 브랜디는 '코냑(Cognac)'이나 '아르마냐크(Armagnac)'라고 한다. '칼바도스'라는 명칭은 프랑스의 '카르바드스'에서 만들어지는 것에만 붙일 수 있으며, 노르망디에 위치하고 있으며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은 '애플 브랜디'로 따로 분류한다. 코냑은 프랑스 토종 포도 품종인 '위니 블랑'이 사용되며, 코냑은 반드시 단식 증류 두 번을 거쳐 만들어진다. 아르마냐크는 프랑스 서남부의 아르마냐크 지역에서 만들어지며, 코냑과 달리 증류 방식에 대한 제한이 없고 대부분 연속 증류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007 샴페인·킹스맨 위스키·아이언맨 와인의 숨겨진 진실
이재훈 영진전문대 호텔항공관광과 교수

이 영화에서 나폴레옹 브랜디 1815가 중요한 디테일로 작용한 이유는 '1815'에 있다. 1815년 6월18일 발발한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북부군이 대프랑스 동맹에 패배하며 나폴레옹 전쟁이 종결된다. 이를 기점으로 프랑스는 몰락하고 대영제국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극중 인물인 해리와 발렌타인이 최후의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나폴레옹 브랜디 1815'로 둘 중 한 명의 몰락을 암시한 것이다.

'아이언맨 3(Iron Man 3, 2013)' 속에서도 와인은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품으로서 작용한다. 아이언맨 3에 나오는 와인은 바로 '헌드레드 에이커 까베르네 쇼비뇽(Hundred Acre Cabernet Sauvignon)'이다. 헌드레드 에이커는 소량 생산, 고품질의 와인을 뜻하는 '컬트 와인(cultus wine)'의 시발점으로 간주해도 무방한 희소가치가 매우 높은 와인이다.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은퇴 전에 100점을 22회나 줄 정도로 컬트 와인의 대표 주자인 것이다. 헌드레드 에이커의 연간 생산량은 2000년부터 1만2천병뿐이며, 매년 3천명 이상의 대기자가 있으며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더라도 5년 후에나 와인을 받을 수 있다.

헌드레드 에이커가 컬트 와인으로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기반에는 와인의 생산 방법이 있다. 수확 단계에서 파셀로, 파셀에서 포도나무로, 포도나무에서 포도송이로, 포도송이에서 포도알을 한 알 한 알 수확한다. 다른 일반 와이너리가 1~2주일 이내에 수확을 끝내는 것과 달리, 헌드레드 에이커는 포도 수확에 3~4주가 소요된다고 한다. 이후 이렇게 전부 손으로 수확한 포도알을 손으로 압착하여 즙을 얻어낸다. 포도가 가진 성질 그 자체를 얻어내기 위함이다. 와인 숙성 기간에도 래킹(Racking)을 안 하는 것이 특징이다. 래킹이란 와인의 찌꺼기를 걸러내기 위한 작업으로써, 숙성 중인 오크통에서 다른 오크통으로 옮겨 담는 것이다. 래킹 작업 시 오크통에서 압력을 이용해 와인을 펌핑해야 하는데 이때 압력을 받은 와인이 고유의 개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주인공인 토니 스타크와 그의 애인이 싸우는 장면에서 노출되는데, 매우 비싸고 희소가치가 높은 와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모습에 아이언맨이 상당한 재력가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 잔의 와인이나 위스키만으로도 영화는 그 의미나 깊이를 풍부하게 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한 잔의 와인으로 특별한 기억이나 경험을 남겨 놓아 보면 어떨까.

영진전문대 호텔항공관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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