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의 모색, 동아시아 도시와 접속하다] "미학적 기준까지 자본 구조화…다양한 정체성 기반 연대 필요"

  • 박승희 대구경북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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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28  |  수정 2023-03-28 07:56  |  발행일 2023-03-28 제14면
〈5강: 4월6일〉 이상하고 낯선, 만남과 마주침의 도시

영남일보·대구경북학회·대구대 인문과학연구소 공동 시민강좌 - 매주 목요일 오후 6시30분 대구생활문화센터

[대구경북의 모색, 동아시아 도시와 접속하다]  미학적 기준까지 자본 구조화…다양한 정체성 기반 연대 필요

직장과 술집, 카페와 마켓, 공공기관과 문화센터, 학교 등 일상의 곳곳에서 우리는 도시와 연결된다. 도시를 에워싼 모든 물질과 움직임이 내 삶의 근거가 되거나 삶을 구성한다. 더욱이 '행성적 도시화(planetary urbanization)'로 명명되는 지구적 규모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시의 삶은 모두의 삶이 되고 있다. 이데올로기와 정치, 문화와 자본, 욕망이 응축된 도시는 모두 것들이 교차하고 해후한 결과들이다. 특히 도시는 정치적 상상과 이를 둘러싼 현실정치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보들레르, 짐멜, 벤야민 같은 근대 초기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를 경험한 유럽의 지식인들이 근대도시의 일상을 자본주의적 근대성이란 알레고리로 풀이한 것도 도시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이다. 하이데거가 '숲길(Holzwege)'에서 말한 '존재에서 분리된 존재자들의 경악'이란 깊은 통찰은 그 결과이기도 하다. 지리학자이자 사회이론가인 데이비드 하비는 도시와 인간의 삶에 대해 질문한다. '우리가 어떤 도시를 원하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하는가,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가와 관련된다.' 질문은 삶의 형태와 공동체, 존재론적 가치와 미적 기준의 실체로서 도시를 의미한다. 그래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어떤 곳인가'란 질문은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질문 중 하나이다.

도시=상상 둘러싼 정치 결정체
이데올로기·자본·욕망 등 응축
산업혁명이 초래한 비극 여전
르페브르 "방안은 도시혁명뿐"

보들레르는 최초로 근대도시 파리를 서정시의 주제로 삼았다. 우울과 알레고리의 시인 보들레르에게 파리는 상품과 자본으로 응축된 우울과 이상이 뒤섞인 이중 도시였다. 도시의 이면은 상품과 화려한 아케이드의 환영(幻影)으로 대체되며 죽음과 뒤섞인 파리의 환상은 그렇게 탄생하였다. 발터 벤야민은 '파리의 원풍경'에서 상품과 패션과 근대자본, 즉 금융에 가려진 매춘과 가난을 도시의 저승적 요소라 표현한다. '고리오 영감'에서 발자크는 '지옥과 매춘의 도시'라고 파리를 직격했으며, 에밀 졸라는 소설 '목로주점'에서 '알코올과 반윤리와 비극의 결정체'로 파리를 묘사했다.

한편 1852년 오스망은 파리 대개조를 통해 근대도시의 모형을 제시했다. 직선으로 뻗은 대도(大道), 상품으로 가득한 아케이드, 하수도와 관청과 금융건물을 중심으로 근대도시 파리를 구현했다. 그러나 이스트 엔드와 같은 노동자들의 주거 공간은 도시 건설을 이유로 정부에 수용되거나 파괴되었다.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이제 도시는 집 대신에 도로가 중심이 된, 판매자이자 상품인 매춘부의 모습'이 되었다고 일갈한 것도 도시 개조와 관련된다. 보들레르의 감각적 알레고리, '악의 꽃'도 그렇게 탄생하였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의 비극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기술·경제, 자본·상품의 단단한 결합 심지어 감정과 미학적 기준조차 자본으로 구조화되는 도시는 미래가 없다. 어쩌면 도시의 지속가능성은 도시학자 르페브르의 말처럼 '도시혁명'뿐일지 모른다. 그는 산업혁명이 초래한 노동과 삶의 해체에 대한 '절규이자 요구'로서 도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그리고 도시이론가 메리필드는 기존의 도시관념에서 벗어나 '뭔가 새로운 것, 뭔가 미래적이고, 생성 과정 중에 있는 도시를 포용'하는 도시혁명을 제안하며, 르페브르의 도시혁명을 새롭게 해석한다. 구체적으로 무력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전락한 시민권 대신 무한히 다양한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일상생활 속 연합적 연대와 감정의 연대 구조와 같은 새로운 주체성을 강조한다. 특정한 내용이나 형태도 없이 도시에 내재하는 실천적 역동성을 도시혁명의 동력으로 보고, 도시 내부에서의 만남과 마주침을 주창한다. 그는 "도시가 보내는 표시는 모임의 신호"이며 "순수한 형태로서의 도시는 마주침, 모임, 동시성의 장소"라는 르페브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도시를 만남과 마주침의 장소로 규정한다.

박승희<대구경북학회장·영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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