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의 모색, 동아시아 도시와 접속하다] "포구서 물물교환해 생계유지…5m 안팎 작은 배서 주거생활"

  • 김상수 해양다큐멘터리 사진작가
  • |
  • 입력 2023-03-28  |  수정 2023-03-28 07:52  |  발행일 2023-03-28 제14면
<6강: 4월20일> 사진으로 만나는 말레이시아 '바다 집시' 이야기

영남일보·대구경북학회·대구대 인문과학연구소 공동 시민강좌 - 매주 목요일 오후 6시30분 대구생활문화센터

[대구경북의 모색, 동아시아 도시와 접속하다] 포구서 물물교환해 생계유지…5m 안팎 작은 배서 주거생활

바다 위, 전통어선에서 생활하는 바자우(Bajau)족, 바다 집시들은 이제 소수만 남아있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각 국가들은 뭍에 정착한 바자우족에게 영주권을 준다. 그러나 그냥 바다에서 선상생활을 하는 바자우족은 영해에 있다 하더라도 그 나라 영주권이 없다. 그러므로 뭍에 발을 내딛는 순간 불법 입국자가 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말레이시아 사바주 산간마을 등에 정착한 '육지 바자우'와 여전히 바다 곁에 붙어사는 바다집시 바자우족은 '같으나 다르다'. 본 뿌리는 같되, 생활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는 얘기다. 예전에는 자신들만의 언어를 사용했으나, 지금은 물물교환 등 생활을 위해 말레이시아어도 알아듣고 말도 한다.

영주권 없어 뭍 내딛으면 불법
바다에 없는 생필품 싣고 떠나
레가타 레파 기간 몸·배 치장
말레이시아서 '레파 퀸' 선정

오랑 라우트(orang laut: 물의 민족)라고도 불리는 무국적 바자우족들은 이제 뭍사람들의 눈치까지 잘 살필 수 있어야 바다 위에서의 유랑생활이 그나마 무난해진다. 표해민(漂海民)답게 잡은 해물을 해안에 늘어선 상인들에게 넘기고 대신 받아 든 생필품을 챙기자마자, 단속 경찰의 사나운 눈길을 피해 서둘러 바다로 되돌아가야 하는 게 오늘날 바자우족들의 모습이다. 뭍이라는 곳은 셈포르나(SEMPORNA)로 말레이시아 사바주 동쪽 해안에 들어선 어촌이다. 인도네시아와 인접해 있고 어부들은 타위타위(TAWI TAWI)섬 등 필리핀과 같은 바다를 삶터로 여기며 살아간다. 말레이시아 바다로 흘러든 바자우들이 물물교환 등을 위해 발을 딛는 이곳은 셈포르나에서 가장 번잡하다는 포구 주변이다. 매일 이른 아침이면 바자우들은 레파에 싣고 온 말린 가오리, 해삼 등 다양한 건어물을 뭍에 올리고, 대신 자신들의 주식인 쌀과 녹말, 설탕과 커피 등 바다에서는 얻을 수 없는 생필품을 레파에 싣고 서둘러 떠난다.


[대구경북의 모색, 동아시아 도시와 접속하다] 포구서 물물교환해 생계유지…5m 안팎 작은 배서 주거생활
바자우족 축제 레가타 레파가 열리는 날 아침 셈포르나 포구를 향해 오는 레파 행렬. <김상수 제공>

바다를 유랑하는 표해민(漂海民)들에게 있어서 뭍은 그리 익숙지 않은 곳이다. 레파에 올라 바다로 나가야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다. 레파(Lepa)는 뭍에 정착하는 대신 여전히 이 바다 저 바다를 떠도는 바다 집시들에게 어구로서의 배이자 주거장소로서의 집이기도 하다.

바다 위에서 마주친 전형적인 한 바자우의 배는 저래도 될까 싶은 정도로 작다. 선체 길이는 5m 안팎, 좌·우현 흘수(吃水)까지 낮아 파도가 치면 바닷물이 쉽게 배 안에 넘칠 듯하다. 지붕에는 그물 따위가 실려 있고, 곳곳에 알록달록 빨래가 걸려있다. 돛대가 보이지 않으니 오로지 상앗대와 근력만으로 배를 몰아갈 터인데, 뜨거운 햇볕과 더위 방지는 좌·우현을 막은 판자가 전부다. 밥 짓기 위한 화덕과 어느 만큼의 장작, 한밤중 조업을 위한 등불이며 얇은 이불 따위도 실려 있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는 추레하달 수밖에 없는 배가 화려하게 치장되는 시기도 있다. 바로 레가타 레파(Regatta lepa) 기간이다. 우리가 집 안팎을 치장하듯 이물과 고물을 전통무늬로 조각을 하거나, 선체에 알록달록한 페인트로 색을 입히기도 한다. 다양한 천으로 꾸민 역삼각형 모양새의 태피스트리 돛을 걸어 갈무리를 하고 보란 듯이 배를 몰아 셈포르나 포구로 모여든다. 동족들끼리 배 모는 솜씨를 겨루는 축제니 셈포르나는 물론 주변 섬에 정착한 바자우족들도 크고 작은 레파를 직접 몰거나 도선을 이용해 축제장으로 찾아온다. 이날만큼은 제복들의 눈치 따위를 살피지 않는 대신 뭍에 오르면 생긴다는 '땅멀미'를 각오하고 나선 길이니 특히 여성들은 옷매무시나 얼굴에도 신경을 쓴 듯이 보인다.

이렇게 레파고 몸이고 치장하느라 애쓰는 바자우들보다도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의 눈이 더욱 즐거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 사바주 정부에서는 이리 별나고 화려한 모양새로 시선을 끄는 바자우 전통어선 레파를 관광자원이자 문화유산으로 여겼다. 해마다 아름답게 꾸민 배를 몇 척 선정해 소유자인 바자우족에게 상품으로 모터엔진과 상금까지 곁들여 주는 한편, 바자우 여성 중에서 '레파 퀸'을 선정해 왕관 대관(戴冠)은 물론, 상금까지 챙겨주면서 적극 장려해 오고 있는 것이다.

김상수<해양다큐멘터리 사진작가·전 월간 '우리바다' 편집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