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미우면 사랑해 버려요

  • 김단희 국악인·서도소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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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29 06:51  |  수정 2023-03-29 07:00  |  발행일 2023-03-29 제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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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단희 국악인·서도소리꾼

조선시대의 양반, 사대부들은 관직에 나아가 출세하는 것만큼이나 시(詩), 서(書), 화(畵)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것을 교양이라고 여겼고, 경치가 뛰어난 곳에 모여 서로의 글과 그림을 감상하곤 했다. 그런 그들이 향유한 노래를 '정가(正歌)'라고 한다.

정가는 맑고 고운 목소리로 불러야 했다. '일청이조(一淸二調)'라는 말이 뒤따르는데, "첫째로 목청이 맑아야 하고, 그다음이 노래의 가락"이라는 뜻으로 좋은 목청을 타고 나지 않으면, 가객으로서 정가를 잘 부르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정가에는 시 위에 곡조를 붙이고 장구 장단에 맞추어 소박하게 부르는 '시조'가 있고, 관현악기가 함께 연주되어 정형미를 갖추어 보다 전문적인 노래로 승화한 '가곡', 뒤이어 긴 사설을 장구와 함께 부른 12개의 '가사'가 있다. 양반 사대부들의 창작행위의 결과물은 작품으로 남겨졌고, 당시의 사상과 철학, 섬세한 감정까지도 느낄 수 있다.

고전 시 중에서 조선 중기 문신 김상용의 시 '사랑이 거즛말이'를 소개한다."사랑 거즛말이 님 날 사랑 거즛말이. 꿈에 뵌닷 말이 긔 더옥 거즛말이. 날갓치 잠 아니 오면 어늬 꿈에 뵈오리." 해석하면 "사랑한다는 거짓말이, 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거짓말이, 꿈에 보인다는 말, 그것은 더욱 거짓말이다. 나같이 잠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꿈에 보이겠는가"이다. 그리움의 대상을 임금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읽히는 대로 보면 사랑에 대해 애틋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조선 시대는 유교윤리를 근간으로 하는 신분제 사회였기에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인간이 느끼는 '사랑' '그리움' '기다림'의 원초적인 감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만남은 필연적으로 관계를 형성하게 되며, 상황과 정서에 따라 호의적인 감정과 그렇지 않은 감정을 동반하게 된다. 관계의 형성은 혼자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상호 간 감정의 조절과 조화에 달려 있다. 감정에 따라 사랑과 미움이 하루에도 수십 번 상하행선 마냥 교차하면서 어느덧 같은 말이 되어 간다.

"미우면 사랑해 버려요, 사랑하면 모든 게 해결돼요." 이옥섭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사랑은 어렵고 복잡한 감정일 수 있지만,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비로소 사랑이 실현된다. 살다 보면 미움, 질투, 투정, 거짓과 같은 부정한 마음이 생기더라도 사랑하며 살고 싶다. 이른 아침, 김상용의 시에 가곡 계면조 평거 선율을 입혀 부른 '사랑 거즛말이'를 들으며. 김단희<국악인·서도소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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