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대 박사의 '똑똑한 스마트시티·따뜻한 공동체'] 시민 행동 바꾸는 '너지'…도시문제 똑똑한 해결

  • 김희대 대구TP 기획평가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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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31  |  수정 2023-03-31 07:06  |  발행일 2023-03-31 제21면
동네 디자인 바꾸고 범죄 예방

지역민 행동변화 유도하는 힘

스마트시티 적용 방법 모색해야

[김희대 박사의 똑똑한 스마트시티·따뜻한 공동체] 시민 행동 바꾸는 너지…도시문제 똑똑한 해결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에는 사람 간에 긴장과 갈등이 늘 존재한다. 최근 한국사회는 계층 간 갈등이 심화하는 것 같다. 가령, 단위 면적당 카페 숫자가 제일 많은 도시에서 돈이 많은 사람은 스타벅스에 들어가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메가커피에 간다. 돈이 많은 사람과 돈이 없는 사람이 한 공간에 있을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건축가 유현준은 도시에서 계층 간 갈등의 원인으로 공통의 추억을 만들어 주는 '공짜로 머무를 수 있는 소셜믹스 도시 공간'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뉴욕에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공원이 있으며 브로드웨이 950m 구간에 벤치가 170개나 있다. 반면 대구 동성로 한일극장에서 중앙파출소까지 벤치는 30개 정도이며, 중앙로역에서 반월당까지 겨우 9개뿐이다. 뉴욕에서는 경제적 배경과 상관없이 평평한 센트럴파크에 누울 수 있고, 공원을 산책하고,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브라이언 파크에서 토요일 여름밤에는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다. 브로드웨이를 참고삼아 경기도가 2019년 '쉼이 있는 도시 공간조성'을 목표로 도내 밀집지역에 벤치를 확충하는 정책을 펼친 적이 있다. 공공도서관, 벤치, 공원, 하천 같은 소셜믹스 공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공통의 추억을 만들고 계층 간 갈등을 완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김희대 박사의 똑똑한 스마트시티·따뜻한 공동체] 시민 행동 바꾸는 너지…도시문제 똑똑한 해결
김희대 (대구TP 기획평가팀장)

이처럼 시민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슬쩍 끼어들어 행동을 바꾸는 방식을 '너징(nudging)'이라고 한다. '너지'는 '옆구리를 슬쩍 찌른다'라는 의미로 2008년 리처드 세일러와 캐스 선스타인에 의해 대중화된 이론이다. 드러나지 않게 행동을 바꾸기 위한 저지는 정부사업, 의료, 모금 활동 등 우리 삶의 영역에 이미 많이 퍼져 있다. 너지를 넣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소프트웨어적인 방법으로 세금 같은 규제정책이나 게이미피케이션, 혹은 인센티브 정책 등을 이용해 시민의 행동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하드웨어적인 방법으로 공간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최근 스마트시티에서도 너지는 높은 관심의 대상이다. 스마트시티는 도시문제와 시민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도시공간과 디지털기술 그리고 사람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도시는 '환경, 생물다양성과 공존하며 공간(도시)을 재해석하고, 시민력을 높이는' 상호작용 수준을 선택함으로써 똑똑한 도시의 수준을 결정한다. 다시 말하면, 첨단기술뿐만 아니라 시민 행동이 도시 문제해결을 위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할 때 성숙한 스마트시티로 진화할 수 있다. 그래서 성숙한 스마트시티는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여 시민의 행동을 바람직한 형태로 바꾸고 긍정적인 도시 가치를 함께 창출하는, 소위 '스마트 너지(smart nudge)'를 다양한 스마트시티 솔루션에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스마트 너지는 우리 주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범죄예방환경설계, 3D횡단보도, 스마트폰 사용자 유저인터페이스 등 스마트시티의 주요 솔루션과 세부기술에 사람이 행위를 선택하는 디자인이 숨어 있다. 특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스마트 너지를 이용하는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로 정평이 나 있다.

여기 두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먼저 '지속 가능한 이웃(Sustainable Neighborhood)'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에너지 소비 절감을 위해 지역 주민의 행동변화를 유도하는 것으로 시민이 스마트 미터기 등을 통해 구체적인 에너지 소비량을 확인함으로써 자발적 에너지 절약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 암스테르담 쥬젠벨드 지역에는 스마트 미터기 500개와 에너지 사용량을 확인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60개가 설치되어 있다. 이 프로젝트는 민간 공공이 파트너십을 구성하여 추진한 대표 사례이다. 암스테르담 시정부와 민간기업(GEO, Onzo), 컨설팅기관(Favela Fabric), 전력망 회사(Liander, Alliander), 주택회사(FarWest, dekey), 연구기관, 암스테르담대학교 등 다양한 참여자가 협동하여 추진하였다.

스마트 너지 기법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많이 응용되지만 일부 비평가나 윤리학자는 너지 이론에 도덕성 문제를 제기한다. 이들은 너지 이론이 자율성을 감소시키고, 존엄성을 위협하며, 자유를 침해하고, 복지를 감소시킨다고 주장한다. 스마트시티 설계자는 비평가들이 제기한 너지의 도덕성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몇 가지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모든 너지는 투명해야 하고 상대방을 오도해서는 안 된다. 또한 너지를 회피하고 싶다면 언제든 쉽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너지 이론은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한다는 전제를 바탕에 두고 있다. 즉, 사람은 너지의 개입이 있어도 결정 자체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바람직한 행동 변화를 위해 스마트 너지를 어떻게 디자인하여야 할까? UNIST 조기혁 교수는 스마트 기술을 적용하여 시민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스마트 너지를 위해 단계별 접근을 권장한다. 첫 단계는 변화할 목표행동(target behavior)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어떠한 수준에서 너지를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 시민과 함께 설계한다. 이 과정을 통해 시민은 스마트시티 거버넌스에 참여하게 되며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주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두 번째 단계는 행동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다. 이때 참여자(시민)들이 스마트폰 같은 쌍방향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공간과 환경 그리고 개인행동 자료를 주체적으로 수집하고 공유함으로써 집단지성을 만든다. 스마트 너지에서 집단지성은 시민 스스로 행동 변화를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촉매제이다. 마지막 단계는 행동 데이터 자료를 분석하고 너지를 통한 개입이 얼마나 행동 변화에 효과적이었는지를 평가하는 과정이다.

스마트 너지는 웨어러블 스마트기기, 대화서비스 지원도구, 집단지성을 만드는 플랫폼 등 다양한 인식기술과 장치를 사용하여 '시민의 행동 선택'을 돕는다. 시민의 행동 선택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 선택한 행동에서 경험할 감정, 자동화된 행동을 만드는 동기부여 등에 관한 정교한 설계로 만들어진다. 선택된 행동은 결과적으로 시민에게 사회적 문제해결 능력을 증대하고, 주어진 미션에 대한 성취감을 높이며, 사회적 결속 같은 스마트시티의 사회적 가치를 제공한다.

도시 안에서 시민의 행동은 복잡하다. 스마트시티는 기술, 사람,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메커니즘이다. 시민의 행동 변화 없이 첨단 기술과 서비스만으로 스마트시티를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민의 바람직한 행동 변화를 만드는 스마트 너지를 통해 지속 가능하며 공통의 추억을 풍성하게 공유하는 건강한 도시가 되면 좋겠다.

<대구TP 기획평가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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