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준의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의 존재가치를 느끼게 하는 두 작품

  • 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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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07  |  수정 2023-04-07 08:46  |  발행일 2023-04-07 제39면
'영화를 말하는 영화'…영화에 대한 고찰과 헌사

[권현준의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의 존재가치를 느끼게 하는 두 작품
[권현준의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의 존재가치를 느끼게 하는 두 작품
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영화는 어쩌면 가장 축복받은 예술장르가 아닐까. 이 분야에서 성공한 훌륭한 감독들이 영화라는 예술이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해 다시 영화로 만들고, 평단과 관객들은 또 그것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니 말이다. 그런데 이제 고작 100년이 넘었을 뿐인 영화예술이 어떻게 이러한 절대적인 존재 가치를 획득할 수 있었을까. 최근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파벨만스', 데이미언 셔젤의 '바빌론'은 영화는 위대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예술이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다. 아마 영화광들은, 아니 영화에 대한 조금의 긍정적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두 영화를 보며 분명 같은 감정을 느꼈을 터이다. 영화에 대한 영화인 두 영화는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을 뿐만 아니라, 다루는 시대도 연결되어 있다. '바빌론'이 1920년대 후반에서 50년까지 사이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의 시대로 넘어가는 격변의 시기를 담았다면, '파벨만스'는 바로 그 뒤를 이은 시대인 1960년대를 다루고 있다.


'바빌론' 1920~1950년대 무성영화 시절 배경
할리우드의 번영과 몰락 적나라하게 보여줘
'파벨만스' 스필버그 감독의 유년시절 이야기
업계에 발 내딛기까지 영화에 대한 열정 다뤄



1927년, '당신은 지금까지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라는 영화 '재즈 싱어'의 대사는 유성 영화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말하자면 과도기이자 혼돈의 시기, '바빌론'을 연출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영화가 존중받고 주류매체가 되기 전, 아직은 저속한 예술로 취급받던 시기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1920~30년대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보다 30년 전인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에서 시네마토그라프라는 영사기를 통해 영화를 대중 앞에 처음으로 선보였을 당시 관객은 30명 남짓이었다고 한다. 티켓값이 너무 비싸 아무나 관람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최첨단의 신생 오락문화는 삽시간에 대중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미국의 5센트 영화관이라 불린 니켈로디언은 저렴한 관람료 덕에 누구나 쉽게 영화관을 찾을 수 있게 해주었고, 일과 일상에 지친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자그마한 희망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바빌론'의 잭 콘래드는 그 희망을 이렇게 표현한다.

'주유소 직원도 영화관에 가지. 왜일까? 거기선 덜 외롭거든. 오늘이 내일로 박제된 깜빡이는 화면을 보며, 미래의 외로운 이들이 깨닫게 해야지. 유레카! 난 혼자가 아니야!'

물론 영화가 이처럼 아름다운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바빌론'은 스크린 위의 화려함과 숭고함 이면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연일 추악한 파티를 즐기며 마약에 찌든 스타들, 임금을 받기는커녕 촬영장에서 목숨까지 잃는 엑스트라들, 박스 안에 갇혀 촬영하다 숨이 막혀 죽은 촬영감독, 흑인을 더 흑인답게 보이도록 검은 분칠을 강요받는 재즈 연주자까지. 누구나 동경하는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탑은 그들의 탐욕과 수많은 이들의 고난 위에 위태롭게 쌓아 올려져 온 것이란 걸 일깨워준다. 그럼에도 여전히 영화는 '대단하고 더 중요한 일이자, 이 거지 같은 인생에서 탈출시켜 주는 영원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믿는 이들이 불나방처럼 날아들게 한다. 영화는 우주를 여행하는 것처럼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가능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빌론'이 영화를 이야기하기 위해 영화산업과 그 안의 사람들을 보여주었다면, '파벨만스'는 스필버그 자신의 유년시절 이야기를 보여준다. 영화를 이야기하기 위해 스필버그가 선택한 건 다름 아닌 자신과 가족의 일상인 것이다. 삶을 바꾸는 영화의 힘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스필버그가 영화를 이야기하기 위해 이러한 선택을 했다는 것은 필연일지도 모른다. 가장 무서운 존재였던 영화가 평생을 함께하는 친구가 되고, 자신이 만든 영화에 친구들과 사람들이 열광하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를 히어로영화의 주인공처럼 담아내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또 자신의 영화에 가족의 비밀스러운 순간이 포착되며 이후 본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리게 하는 것도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필버그는 삶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것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아버지 버트는 아들 새미(스필버그)에게 영화는 24개의 프레임이 연속하여 움직이는 것이라고 설명해준다. 유능한 컴퓨터 엔지니어였던 아버지는 그저 과학적으로 설명을 한 것이지만, 이후 새미는 그 하나의 순간(프레임)이 가지는 절대적인 무게와 가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가족의 일로 방황하던 새미는 그럼에도 영화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우연히 가장 위대한 감독인 존 포드와 조우하게 된다. '시민 케인'의 감독 오손 웰스가 좋아하는 감독 3명이 누구냐는 질문에 '존 포드, 존 포드, 존 포드'라고 답했을 정도로 그는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이자 감독들의 왕이었다. 새미는 그런 그와 짧은 대화의 순간을 가진다. 존 포드는 영화 포스터를 가리키며, '그림 속 지평선이 아래에 있거나 위에 있으면 흥미롭지만, 중간에 있는 건 더럽게 재미없다'고 말해준다. 아마 이 짧은 순간 샘은 앞으로 펼쳐질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보았을 것이다.

'영화는 꿈이야, 절대 잊히지 않는 꿈' - <파벨만스>

'당신이 죽은 뒤 언젠가 영화를 다시 트는 순간, 당신은 다시 살아날 거야. 당신의 시대는 끝났지만, 천사나 영혼들처럼 영원할 테니' - <바빌론>

'파벨만스'와 '바빌론'의 저 대사처럼 영화는 영원할 수 있을까? 100년 남짓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영화는 사람들의 가장 가까이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함께해왔다. 그것이 영화의 위대함이고 가장 중요한 존재가치가 아닐까. 앞으로도 수많은 영화가 있을 것이고 그 영화들은 우리의 삶을 바꿀 것이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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