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 사이토 마리코의 '광합성'

  • 송재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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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03  |  수정 2023-04-03 07:03  |  발행일 2023-04-03 제25면

[송재학의 시와 함께] 사이토 마리코의 광합성
시인

나무를 일본말로 KI라고 하며 한국말로는 NAMU라고 한다. 십 년 전에 처음 한국말을 배웠을 때 '나무'란 낱말이 나의 가슴속으로 뿌리를 내렸다.

한국에 온 지 두 달 동안 줄곧 아래만 보면서 돌아다녔는데 유월이 되고 처음으로 눈을 들어 봤더니 그들이 잎사귀를 살랑거리며 서 있었다.

그들을 '나무'라고 부르면 내 속에서 '나무'가 답례했다. 십 년 공들여 간신히 푸르게 자란 잎사귀들이 눈부시게 펄럭이면서.

사이토 마리코는 1991년 한국으로 유학을 와서 연세대와 이화여대 어학당에 다녔고, 1993년에 한국어 시집 '입국'을 출판했다. "여기에 실린 시를 처음에 썼을 때는 먼저 일본어로 쓰고 나중에 한국어로 고쳤다. 그러다, 쓰면서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 나오자 다른 말로 바꾸어 쓰고 또 한국어로 번역하기 쉬운 말을 골라서 쓰게 되었다. 그다음에는 처음부터 한국어로 생각하고 한국어로 쓰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시인의 말은 나에게 와서 다른 언어에 대한 기준이 되었다. "그들을 '나무'라고 부르면 내 속에서 '나무'가 답례했다"고 했을 때 나무는 KI(き)이면서 NAMU(나무)이고 樹(shu)이다. 키와 나무와 슈가 같은 종족임을 알아갈 때 푸르게 자란 잎사귀들이 살랑거리고 펄럭이는 것을 훨씬 잘 느낄 수 있다. 우리, 백인, 흑인이 호모 사피엔스의 같은 후손이듯 나무들은 3억년 전 광합성을 시작한 이래 모두 같은 식구이다.
송재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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