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형복의 텃밭 인문학] 봄을 맞는 텃밭농부의 자세…제 집을 기계로 갈아엎지 마세요 삽질로 공생해요~

  • 채형복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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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14  |  수정 2023-04-14 07:47  |  발행일 2023-04-14 제38면
미생물 보호를 위해 기계 대신 삽질

이랑 만들 때 이물질 골라내기 필수

흙 속에 숨은 비닐조각 특히 신경써야

두렁 태우기 병충해 예방에 효과 없어

산불 유발 가능성 큰 소각행위 주의를

[채형복의 텃밭 인문학] 봄을 맞는 텃밭농부의 자세…제 집을 기계로 갈아엎지 마세요 삽질로 공생해요~

봄이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소리 없이 다가오는 봄을 막을 재간은 없다. 겨울 동안 텅 빈 텃밭을 보노라면 동장군의 기세에 눌려 모든 생명이 죽은 듯 고요하다. 그러다 응달의 잔설이 녹고 따뜻한 햇살에 서서히 땅이 풀리면 봄은 순식간에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마치 몸을 낮추고 진지에 숨어있던 병사들처럼 '돌격 앞으로!'란 지휘관의 명령이 내리길 기다렸다는 듯 봄은 '와!' 함성을 지르며 돌격한다. 이맘때가 되면 텃밭농부의 손길도 덩달아 바쁘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농사에도 때가 있다. 절기에 맞춰 땅을 일구고 씨 뿌리고 작물을 가꾸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고 만다.

언 땅이 녹았는지 아닌지는 눈으로 보면 알 수 있다. 물기 머금은 흙은 부드럽고 푹신하여 손으로 누르면 그대로 쑥쑥 내려간다. 기온이 빠르게 오르고 물기가 빠지면 금세 땅이 굳고 딱딱해진다. 틈틈이 삽질하여 두둑을 만들어두지 않으면 나중에는 곱절 이상의 힘이 든다. 매년 두둑을 새로 만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가을걷이로 허물어지고 파인 곳을 보수하는 식으로 두둑을 재활용하면 좋다.

애써 삽질로 이랑을 만드는 모습이 안타까운지 이웃들은 관리기나 경운기로 땅을 갈아주겠다고 한다. 그 마음이야 고맙지만 매번 정중히 거절한다. 내가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굳이 삽질을 고집하는 이유는 흙 속에 살고 있는 벌레와 미생물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한자어로 경작은 '밭갈 경(耕)'에 '지을 작(作)'을 합친 말이다. 이 말대로 농사는 기본적으로 땅을 갈아엎어 작물을 가꾼다. 인간이 먹고살기 위해 땅을 갈아 농사를 짓는 이 행위가 벌레의 입장에서 보면 지진이나 해일보다 더 큰 재난이다. 생각해 보라. 흙을 집 삼아 평온하게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몸집을 가진 인간이 나타나 굉음을 내는 기계로 땅을 갈아 뒤엎어 버리니 엄청난 공포를 느끼지 않겠는가.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일을 비유적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자녀를 키우고 돌보듯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이 말은 부모의 마음으로 땅을 돌보아 생명을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는 사람이 농부라는 뜻이기도 하다. 예부터 동양에서는 땅을 어머니로, 하늘을 아버지로 본다. 천지는 자연이니 자연은 곧 부모와 같다. 이렇듯 땅은 어머니의 몸이자 영혼이다. 땅에서 태어나고 죽는 우리는 모두 땅의 자식이다. 인간은 먹고살기 위해 농사를 짓지 않을 수 없지만 할 수만 있다면 어머니의 몸과도 같은 땅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두둑을 메우고 고랑을 파는 등 이랑을 만들면서 함께 해야 할 일이 있다. 흙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이물질을 골라내는 것이다. 크고 작은 돌멩이와 쇳조각과 같은 날카로운 물건은 없는지 세심히 살펴야 한다. 그중에서도 유독 신경 써야 할 것이 바로 비닐 조각이다.

아무리 신경 써서 거두었다고 해도 땅을 파보면 크고 작은 조각 비닐이 숨어있다. 관리기나 경운기를 사용하면 흙과 함께 비닐도 잘게 부서져 산산조각 나버린다. 비닐은 썩는 데 수백 년이 걸린다고 한다. 비닐을 쓰지 않고 텃밭을 가꿀 수 있으면 좋겠지만 비닐을 대체할 마땅한 멀칭방법을 찾지 못했다. 자연환경을 헤치고 땅을 오염시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다. 현재로는 비닐이라면 작은 조각이라도 주워 따로 모아 버려 토양오염을 최소화하도록 애쓸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비닐의 오남용으로 인한 농촌의 환경오염은 여간 심각하지 않다. 집을 짓기 전 주말 텃밭을 할 때였다. 한동안 방치된 탓인지 텃밭 한구석에는 쓰레기가 가득 쌓여있었다. 주민들이 각종 생활 쓰레기를 이곳에 갖다버린 것이다. 이뿐이 아니었다. 채소를 심으려 땅을 파보니 여기저기 플라스틱으로 만든 그릇과 접시가 나왔다. 무엇이든 땅에 묻어버리면 그만이라 여긴 것일까. 생명이 없는 플라스틱은 싹을 틔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른단 말일까. 환경과 생태에 대해 배우거나 교육받은 적이 없으니 이해는 하면서도 가슴이 답답하였다.

또한 봄농사를 짓기 전 무엇이든 불에 태워버리는 관행도 여간한 문제가 아니다. 논밭의 두렁을 태우는 게 병해충 예방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하지만 이보다도 정작 농부들의 골칫덩이는 가을걷이를 마치고 남은 고춧대나 옥수숫대를 비롯한 부산물이다. 농가에서 아궁이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으니 불쏘시개나 땔감으로 쓸 수도 없다. 제대로 처리할 방법이 없으니 밭에서 불태워 없애버리는 것이다. 밭갈이를 하는 초봄에는 산불이 나기 십상이다. 바싹 마른 작물의 찌꺼기의 불씨가 샛바람을 타고 날아가 가까운 산의 낙엽에 옮겨붙으면 걷잡을 수 없다. 봄철 대형 산불은 대부분 사람의 부주의로 일어나는 실화이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그러니 관건은 작물의 부산물을 남기지 않고 처리하는 데 있다. 전업농은 농기계임대은행에서 파쇄기를 빌려 잘게 부순 후 밭에 뿌려 거름으로 활용하면 된다. 그러나 그리 넓지 않은 텃밭농사를 지으면서 파쇄기를 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쓰는 방법은 잘게 자르기다. 고추와 옥수수를 거두고 나면 곧바로 전지가위나 작두로 토막 내어 자른다. 이때는 물기가 많은 상태라 그리 힘들이지 않고 자를 수 있다. 제때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놔둔 채 딱딱하게 굳어버리면 처리에 애를 먹는다. 밭 가장자리에 쌓아두면 공간도 많이 차지할 뿐 아니라 보기에도 좋지 않고 잘 썩지도 않는다. 도구를 이용하여 잘게 자르거나 썰어 다시 땅으로 되돌려 주면 그만이다. 땅은 위대하다. 어머니가 자식을 품고 키우듯 대지는 넉넉한 품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영양분 가득한 거름으로 썩어 새 생명을 키우는 퇴비가 된다.

[채형복의 텃밭 인문학] 봄을 맞는 텃밭농부의 자세…제 집을 기계로 갈아엎지 마세요 삽질로 공생해요~
채형복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밤새 소리 없이 봄비가 내렸다. 이 비 그치면 땅은 마법을 부릴 것이다. 좁쌀보다 작은 씨앗이 거친 흙을 뚫고 해맑은 얼굴로 솟아나는 모습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어린 새싹으로 자라나는 자연의 신비를 마주하면서 텃밭농부는 어떤 자세로 이 봄을 맞아야 할까. 자작시 한 수로 그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 처음 하는 일이/ 꼿꼿한 허리 숙여/ 밤새 무탈한가 안부 묻고는

찬찬히 바라보고 살피고/ 손으로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코로 냄새 맡고 얼굴 부비고

아프면 약 주고/ 목마르면 물 주고/ 벌레 있으면 잡아주고

외로우면 안아주고/ 기쁘면 함께 웃고/ 자주 무릎 꿇고 기도하며

갓 피어난 꽃술에 입 맞추고/ 따뜻한 연민의 눈물로/ 거칠고 투박한 흙을 적셔

병들어 아프고 다친/ 어린 생명을 구하고/ 땅의 품에 안겨 고이 잠들다 (졸시, '텃밭농부의 자세·1' 전문)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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