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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 |
국민 4명 중 3명이 국회를 불신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최근 국회 안팎에서 정치개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오늘부터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국회 전원위원회가 나흘간 열린다. 정치개혁은 실로 긴요한 국가적 과제이다. 정치개혁이 성공하려면 진단과 처방이 옳아야 한다.
왜 국회는 불신의 늪에 빠졌는가. 그것은 정당 및 국회의원의 '후진적 정치행태'와 국회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 기인한다. 여야 거대 정당은 경세제민을 위한 정책경쟁보다는 상대방 실정의 반사이익으로 집권하는 적대적 경쟁 게임을 하고 있다. 정당과 국회의원은 보다 자극적이고 거친 언어로 서로를 공격한다. 국민이 듣기에도 민망한 막말들을 쏟아내는 국회의원들이 있고, 이런 국회의원이 당내에서도 목소리가 크다. 공격 타깃을 정하면, 프레임을 만들고 팬덤을 동원하여 보다 거칠고, 보다 넓게 전선을 확대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과 국론을 철저하게 분열시킨다. 더 놀라운 것은 심지어 거짓 선동을 하기도 하고, 자신이 공격했던 똑같은 행태를 스스럼없이 하고도 여론이 나빠지면 괴변으로 일관한다. 내로남불은 이제 한국 정치판의 상징적 언어가 되었다. 후진적 정치행태의 실체이다.
적대적 경쟁관계에서 걸핏하면 국회는 개점휴업 상태이다. 예산 심의와 법안 심의를 제대로 할 시간이 없다. 예산안은 매번 법적 시한에 몰려 제대로 된 심의도 못 한다. 많은 법안들이 제대로 된 심의도 없이 무더기로 상정되어 초고속으로 처리되고, 다수당은 법안 단독 강행처리에 익숙해 있다. 그런데 국회의원 세비 인상, 보좌관 수 확대 등 국회의원 권익 안건에 대해서는 놀랄 정도로 의견 일치를 잘 보고, 국민의 관심을 피해 신속하게 처리한다. 국회의원 수 확대를 끊임없이 모색하면서, 불체포 특권 등 각종 특권 줄이기는 립서비스로만 한다. 한국은 인구 대비 국회의원 수에서는 유럽에 비하여 적지만 미국의 4.5배이고, 대신 보좌관 등 각종 특권에서는 유럽에 비하여 현저히 많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실체이다.
어떻게 이런 정치행태가 계속될 수 있는가. 그것은 한국 정치 지배구조의 특성 때문이다. 한국 정치는 거대 양대 정당이 지배하는 복점 구조이고, 국회의원은 물론 지자체 의원에 이르기까지 독점적 하향식으로 공천한다. 독점적 하향식 공천 제도가 '정치적 지역주의'와 '교조적 이념주의'와 맞물리면서,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의 공천은 곧 당선으로 이어지고, 국회의원은 국가와 국민보다 당권자와 특정 지지층을 위한 충성경쟁을 하게 된다.
정치적 지역주의는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교조적 이념주의는 의회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독점적 하향식 공천 제도와 정치적 지역주의가 지배하면,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의 선택권과 심판권이 본질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교조적 이념주의가 지배하는 곳에는 다양한 의견 표출, 협상과 타협이 어렵기 때문에 의회주의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독점적 하향식 공천 제도, 정치적 지역주의와 교조적 이념주의, 그리고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극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치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정치적 지역주의와 교조적 이념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선거구제와 공천 제도를 혁신해야 한다. 인구 50만명을 기준으로 2명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고 지역 국회의원 수를 200명으로 하고,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서 국회의원 보좌관 수, 불체포 특권 등 각종 특권을 과감하게 줄이고, 회기를 늘리고 심의를 거치지 않은 법안 처리를 제도적으로 막을 필요가 있다. 정치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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