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창] 출제자의 의도보다 문장의 맛

  • 김살로메 소설가
  • |
  • 입력 2023-04-12  |  수정 2023-04-12 06:57  |  발행일 2023-04-12 제26면
한·일 대입시험 국어문제에

가공된 정답만을 요구하고

작품 메시지·글 멋은 무의미

문학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작가 특유 정서감상 교육을

[시선과 창] 출제자의 의도보다 문장의 맛
김살로메 소설가

이를테면 작가의 작품을 입시 시험에 활용할 때 말이다. 출제자는 작가의 의도 같은 건 고려하지 않는다. 오직 출제자의 의도가 있을 뿐이다. 한 번도 작가의 의도를 미리 물어봤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것이 의문이었다. 다행히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반가워라, 엔도 슈사쿠의 산문 '침묵의 소리'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작가의 소설 일부가 일본 대학 입시에 출제된 적이 있었다. 지문의 주인공이 그러한 행위를 한 이유를 보기에서 고르라는 문항이 나왔다. 작가도 시험 삼아 그 문제를 풀어 보았다. 작가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출제자, 즉 대학이 정답으로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달랐다나. 작가가 보기엔 모든 항목이 정답이었다. 하지만 대학 측은 하나의 보기만 정답이라고 정해놓았다. 그 지문을 쓴 이는 문제를 낸 대학교수가 아니라 바로 작가 자신이 아니냐며 엔도 슈사쿠는 의아해했단다. 그때 이후 국어 수업이나 학교 시험이란 게 으레 그런 것이라며 체념했단다.

일례로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이 문장은 맛있다"라는 식으로 배운 기억이 전혀 없단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학창 시절, 우리는 문장이나 문체의 중요성이나 참맛에 대해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입시를 위한 텍스트로 문학이 활용될 뿐, 그 문장들이 지니는 고유한 멋이나 맛에 대해서는 제대로 학습하지 못했다. 문장에 눈을 뜨기 시작할 때, 진정 소설이 보이고 시가 보이는 데도 말이다. 아무도 그것에 대해 말해 주지 않았다. 문장의 맛과 힘으로 직조하는 작가에게 작품의 의도나 메시지가 하나만 있을 리 만무하다. 희한하게도 작가의 텍스트가 출제자의 손으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작가의 의도를 물어주지 않는 그 지문은 출제자의 의도대로 가공되어 유일한 답을 기어코 내놓고 만다.

일본 작가에게만 해당하는 사례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유명 시인도 이런 경험을 고백한 적이 있다. 시인의 시가 수능 시험에 출제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후배들이 내민 시험지를 시인이 보았다. 다른 시인의 시 두 편과 더불어 세 편의 시의 공통점을 찾는 문제였다. 다섯 개의 보기 중 마지막 5번이 정답이었다. 안타깝게도 시인은 답을 맞히지 못했다. 자신의 시가 정답의 보기를 노래했다는 사실을 답지를 보고 '깨달아야 했다'고 한숨지었다. 이보다 더한 블랙 코미디가 어디 있을까.

학창 시절에는 몰랐다. 교과서에 실린 황순원의 소나기가 얼마나 정교한 단문의 극치인지. 그 시절엔 몰랐다. 정답이나 오답을 고르는 일보다 문장이나 문체의 고유한 리듬이나 맛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무도 정치(精緻)한 문장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작가의 의도를 문장으로 이해하기보다 필요에 의한 입시 위주의 해설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문학적 상상력에 얼마나 치명적인 방해가 되었는지, 그때도 말하는 이 없었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문학 지문은 논리가 아니라 상황으로 말한다. 작가 특유의 정서나 감성으로 재미와 공감을 불러들이는 게 문학이다. 출제자의 의도와는 멀어진다 해도 정답이 될 수 있는 게 문학 지문의 특성이다. 그러니 어찌 하나의 정답만이 있을 것인가. 출제자의 의도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굳이 따진다면 문학은 작가와 독자의 유기적인 의도 그것에 의해 움직인다. 문학은 다층적인 구조로 다양한 의미를 추구하기에 한마디로 체계화할 수 없다. 똑 떨어지는 정답으로 유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질 않나. 정답 찾기보다 문장의 맛과 멋을 맛보고 느끼게 하는 게 제대로 된 문학 감상법이 아닐는지.

김살로메 소설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