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직구 핵직구] 쌀 한 톨의 무게

  • 이재동 변호사
  • |
  • 입력 2023-04-12  |  수정 2023-04-12 06:52  |  발행일 2023-04-12 제27면

[돌직구 핵직구] 쌀 한 톨의 무게
이재동 변호사

평화운동가이자 가수인 홍순관은 '쌀 한 톨의 무게'라는 노래에서 손바닥에 가만히 올려놓은 쌀 한 톨에 우주의 무게를 느낀다고 했다. 그 속에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빛이' 스몄으며, 농부의 새벽이 숨어 있다고 한다. 쌀이 곧 생명인 시절이 있었다.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 다랑이논이나 개천의 메기가 하품만 해도 물에 잠긴다는 상습침수지 논들은 사람의 정성에 더해 하늘의 감응이 있어야 알찬 수확이 가능했다.

흥부의 아들이 소고깃국에 흰쌀밥을 말아먹는 것이 소원이었듯이 세끼 밥을 꼬박꼬박 먹는 것이 곧 행복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벼농사가 풍년이 들고 백성들이 배불리 밥을 먹는 것은 성군(聖君)이 다스리는 태평성대의 상징이었다. 밥맛이 없다는 말은 살맛이 없다는 뜻이었고, 밥숟가락을 놓는 것은 세상을 뜨는 것이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에서는 같이 모여 밥을 먹는 것을 제사라고 하였다. '제사가 식사요, 식사가 곧 제사다'라는 말은 밥을 먹는 일은 내 안의 하늘에게 밥을 바치는 것이어서, 위패를 벽에 붙일 것이 아니라 내 몸에 붙여야 한다고 했다(向我設位).

그만큼 밥을 먹는 일이 중요하고도 어려워서 직장을 얻고 일을 하는 것을 지겨운 밥벌이라고 한다. 시인 이성복은 밥을 '어머님 젊으실 적 얼굴'이라고 표현하기도 했고, 어느 날 '참, 아저씨나 나나…'라고 말을 걸어왔다고 하여 매일 먹는 밥에서 자신의 처량한 모습을 보기도 하였다.

구한말에 네 번이나 조선을 방문하였던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여행기에서 당시 조선 사람들의 대단한 식탐에 놀랐으며 너무 많은 식사량으로 소화기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많다고 언급하였다. 비숍 여사는 당시 조선인들이 하루에 먹는 밥의 무게를 1.8㎏이라고 적었는데, 지금 하루에 우리가 먹는 쌀이 155g 정도에 불과한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보다 물경 열두 배를 먹었다는 것이다. 통계를 보면 우리는 30년 전보다도 개인이 먹는 쌀의 양이 절반 정도 줄었으며, 하루에 불과 밥 한 공기 반 정도를 먹는다고 한다. 공장식 축산으로 상대적으로 싸진 육류의 소비량이 엄청 늘었고 젊은 세대일수록 탄수화물의 섭취를 꺼리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벼의 품종이 향상되고 관개나 수리(水利)가 좋아져서 생산량은 증가하였는데 반하여 소비는 급감하여 생명줄이던 쌀이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다수확 품종은 심지도 못하게 하고 경작하는 논의 면적을 줄이려고 애쓰고 있다. 그럼에도 폭락하는 쌀값으로 고통받는 농민들을 위한 양곡법 개정안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고 말았다. 경제원리를 주장하는 여당이나 식량안보를 주장하는 야당이나 다 할 말이 있다.

그러나 '농자천하지대본' 깃발 아래서 하루 세끼에 연연하며 살아온 우리 세대들에게는 논농사가 사라져 농촌이 쇠락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농촌이 망하는 것은 지방이 사라지는 것이고 나라의 뿌리가 흔들리는 일이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되었는데도 유사시에 대비하여 엄청난 돈을 국방비로 쓰는 것을 보면 식량위기라는 미래의 사태에 대비하여 농민들을 보조하는 것이 그리 부당해 보이지도 않는다. 쌀 한 톨이 아니라 한 가마니의 무게도 가볍기만 한 요즘이다.

이재동 변호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