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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로 잘 알려진 미국 동부의 도시 보스턴은 아직도 "내가 메이플라워호 몇 세손이야" 하는 사람들이 싫어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는, 토론토에서 같이 공부했던 미국 친구의 말처럼, '뼈대 있는 가문' 같은 게 중요한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그런 보스턴 출신에 1930년대에 하버드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였던 어머니와 역시 변호사인 아버지, 그 옛날 판사로 중국에서도 근무했던 증조부를 두었고, 그런 집안 자녀들의 엘리트 코스대로 사립 기숙학교와 동부의 명문 사립여대를 나와 외과의사인 남편과 결혼했었던 동료의 사스카툰 집은 참 아름다웠다. 어릴 때 자랐던 보스턴의 집 자기 방에서 쓰던 램프, 7세 때 처음으로 산 그림, 증조부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수많은 가구, 장식품, 예술작품과 옷들 그리고 교육학 교수로 일하지만 미술사를 전공했었던 본인의 취향이 반영된 미술작품들로 마치 갤러리 같은 느낌을 주는. 흔히 말하는 명품 브랜드의 옷이나 가방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한 번, 고가구점에서 낡은 거울을 사서 도금하고 집안 도면도 직접 그렸대서 또 한 번 놀랐다.
물론 그런 배경을 타고난 사람의 특권이 있기에 가능한 삶이고, 사회계층 고착화의 문제는 미국에서도 심해서 명문학교, 갈 수 있는 휴가의 장소, 옷차림을 포함한 매너나 문화 등은 북미의 (중)상류층에게도 중요한 계급 재생산 시스템이다. 동시에 한편으론 가전제품은 어떤 스타일, 가구와 자재는 어느 곳 어느 브랜드 식으로, 상품화된 획일적 유행을 좇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역사와 이야기로 집을 꾸미는 것은 참 좋아 보였다. 본인 말로는 오랫동안 부유했던 사람들의 취향이라고. '새것'이 좋다며 끊임없이 옛것을 허물고 새 아파트, 새 집을 짓기에 바쁜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그리고 북미에 와서도 비슷한 취향을 보이는 그 지역 출신의 이민자나 유학생들이 선호하는 거주지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집을 꾸미는 것은 부와 (그로 인한)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무엇을 appreciate하는(진가를 이해하는)가의 문제라는 대화를 동료와 나누었다. 그리고 개인의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모건스탠리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이 지난해 세계에서 1인당 명품 소비를 가장 많이 한 나라라고 한다. 소수의 구매력이 크게 좌우하는 명품시장에서 1인당 소비액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일상에서도 한국인의 유난한 명품사랑은 크게 느껴진다. 특정 명문대 위주의 학벌에 대한 집착은 더해서 개인과 그 가족의 삶을 온통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사회가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들 하지만, 사회구조는 그 속에서 자라는 개인의 의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결국은 개개인의 의식이 그런 구조를 재생산한다. '학벌사회'나 '명품사회'가 내 삶을 힘겹게 한다면, 사회정치적 구조를 바꾸는 노력과 더불어 개인의 의식도 바뀌어야 하는 이유.
미국의 영성가 에크하르트 톨레의 영상을 듣다가 어떤 대상에 집착하는 것은 그것을 에고(자아)의 확장이라고 보기 때문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나의 가치는 내가 다닌 학교, 내가 하는 일, 내 가족의 배경, 내가 가진 물건 등과 상관없는 고유한 것이라, 그것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확신과 체험을 가진 개인들도 학벌과 명품에 대한 사랑이 이렇게 뜨거울까? 내가 내 삶에서 가장 appreciate하는 것은 무엇인가?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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