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베트남과 경북, 그리고 봉화

  • 김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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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17 06:57  |  수정 2023-04-17 06:57  |  발행일 2023-04-17 제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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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경북본사 총괄국장

베트남전, 박항서 감독의 축구, 쌀국수, 한류(韓流)…. 베트남 하면 떠오르는 것들로, 각자의 경험과 관심에 따라 연상되는 게 다를 거다.

필자는 보직 때문에 경북의 눈으로 베트남을 보기도 한다. 경북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외국인은 베트남 출신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2021년 말 현재, 경북의 외국인은 5만9천821명. 이 중 베트남 국적이 1만6천960명(33.2%)

으로 가장 많다. 경북에서 보는 외국인 3명 중 1명이 베트남 출신이다. 베트남 출신 근로자들은 경북의 각 산업 현장과 농어촌에서 이미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베트남 출신 엄마가 있는 가구도 매우 많다. 작년 말 현재 경북의 다문화 가구(1만5천58가구) 중 베트남 출신 다문화 가구(4천768가구)가 가장 많다. 경북의 일상 깊숙이 베트남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이런 베트남이 전 세계적으로 매우 주목받는 나라다. 1억명에 이르는 인구만으로 베트남은 매력적인 소비시장이다. 그래서 전 세계의 많은 기업이 베트남 시장을 노리고 있다. 경북 의성군이 베트남 호찌민에 농특산물 매장을 두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시에 베트남은 평균 연령 32세로, 매우 젊은 나라다.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평균 연령 44.5세의 우리나라보다 12살이나 젊다. 노동력이 풍부하고 역동성도 있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베트남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베트남과 밀도 높은 관계를 맺는 것은 경북의 발전, 나아가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 그 중심에 경북 봉화군이 설 수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봉화에는 의미 있는 베트남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왕족의 후손들이 오랜 세월 우리나라에서 화산 이씨(花山 李氏)로 살아왔는데, 그 흔적이 봉화에 있다. 베트남 '리(李) 왕조'(1009~1225)의 왕자 이용상은 역성혁명으로 왕조가 바뀔 무렵, 고려로 피신해 황해도 옹진군 화산마을에 살았다. 이용상의 둘째 아들 이일청이 안동부사로 부임하면서 봉화에 정착했다. 봉화군 창평리에는 나라에 공을 세운 화산 이씨를 기리는 충효당(忠孝堂)이 있다. 지금도 10여 가구의 화산 이씨가 창평리에 산다. 베트남 왕족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 800여 년 동안 봉화를 터전으로 우리 국민으로 살았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봉화군은 2018년부터 창평리 일대에 베트남타운 조성을 추진해 왔지만, 가시적인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필자가 만난 박현국 봉화군수는 베트남타운 조성에 의지가 강했다. 박 군수는 멋진 정주 여건과 베트남 공간을 만들어 베트남 출신이 모여 살고, 한국으로 관광 오는 베트남 사람들이 반드시 찾는 타운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타운 조성은 봉화군의 의지만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베트남타운 조성은 "경북이 '아시아의 작은 미국'으로 불릴 수 있게 하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인구·이민정책 방향과도 맞다. 경북도가 더 많은 관심을 가질 만하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관심과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가 나서면 베트남 정부의 관심은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것이고, 타운 조성 사업에 대한 베트남의 투자까지 가능해진다. 인구절벽 시대에, 지방소멸이 눈앞의 위기로 와 있는 지금, 베트남타운 조성은 의미 있는 돌파구가 될 것이다. 지방시대를 앞세우는 윤석열 정부가 나설 명분과 실익이 충분하다. 정부의 결단을 촉구한다.
김진욱 경북본사 총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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