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창] 祖宗(조종)의 법은 불가침인가

  • 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 |
  • 입력 2023-04-19  |  수정 2023-04-19 07:01  |  발행일 2023-04-19 제26면
법의 연속·일관성 중요하나

시대 따라 유연성 발휘 필요

입법만능주의 단점 해결은

행정부에 대한 위임 확대와

지방의 자치입법권 강화로

[시선과 창] 祖宗(조종)의 법은 불가침인가
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역사 드라마를 보면 어떤 사안을 두고 의견이 갈라질 때 자기주장이 옳다는 근거를 옛날부터 내려온 법규나 선대 임금들이 처리한 선례에서 찾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이는 신하들이 임금의 생각을 반박하는 경우는 물론이요, 때로는 임금도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한 논리로 이용한다.

법이 갖추어야 할 요건 중의 하나는 연속성이다. 법이 권력자의 자의에 의해 조령모개식으로 바뀌거나 조삼모사식으로 운용된다면 법 적용에 있어서 예측 가능성은 떨어지고 시민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법 집행에서 요구되는 또 다른 요건은 구체적인 적용에서의 유연성이다. 법도 다른 모든 사회제도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시대와 상황을 규율하기 위해 탄생된 것이므로 여건이 바뀌면 끊임없이 수정되고 재해석되어야만 한다. 지난 시대에 만들어진 법으로는 현실사회의 변화무쌍하고 예측 불가능함을 제대로 규율하기 어렵다. 더욱이 정보화와 세계화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는 변화의 크기나 속도에 있어서 봉건왕조 시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번 제정된 법규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법은 현실을 규율하지 못하는 빈껍데기가 된다. 법 적용이 교조화되고 유연성이 떨어지면 사회의 역동성을 해치고 오히려 사회발전의 뒷다리를 잡는 일도 생긴다. 여기에는 헌법도 예외가 아니다. 인권과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시장경제와 같은 원칙은 언제까지나 지켜져야 하겠지만 국가의 운영을 둘러싼 제도나 기준은 바뀔 수 있고 또 바뀌어야 한다. 87년 헌법 체제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는데도 옛 법을 쉽사리 바꾸면 안 된다는 주장이나 현실에 대한 인식의 결여로 그대로 두고만 본다면 미래지향적인 국가 운영에 장애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제정 당시의 취지와 달리 법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생기면 쟁송이 남발하게 되고 사회 불만도 가중된다. 최악의 상황은 법이 기득권자들이 자기 이익을 지키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법은 만들어지는 순간 힘과 조직 그리고 이해집단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 모두가 세부적인 사항까지도 법규로 정하고자 하는 유혹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무슨 일만 생기면 정치적 해결이나 행정적 수단을 통한 해결보다는 일단 새로운 법부터 만들려는 입법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입법만능주의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 중의 하나로 행정부에 대한 위임입법의 확대와 지방의 자치입법권의 강화를 들 수 있다. 행정부의 자의적 법 운영을 막기 위해 입법부가 법률 제정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개별 사안에 대한 신속하고 구체적인 조치의 필요성이나 행정부의 축적된 능력을 감안할 때 이는 분명히 현실적인 대안이다. 우리는 자주 시급함이 요구되는 민생 관련 법안의 개정이 정쟁의 희생양이 되어 논의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한 채 국회에서 잠자고 있음을 본다. 이렇게 4년이 흐르고 새 의회가 구성되면 원점에서부터 다시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소프트한 사회 인프라도 끊임없이 유지 보수가 이어져야 한다는 면에서 행정부나 지자체가 보다 신속히 행동에 나설 수 있다. 행정부를 믿고 위임을 확대하되 적절한 규제와 남용방지 대책을 함께 마련하면 될 일이다. 비록 조종의 법이라 하더라도 시대 상황에 따라 과감하게 바꾸고 적용의 유연성을 높이는 용기가 있어야만 나라와 사회 발전이 지체되지 않는다.

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