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라라걸' (레이첼 그리피스 감독·2020·호주)…스포츠 영화에 인생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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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21 08:17  |  수정 2023-04-21 08:19  |  발행일 2023-04-21 제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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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스포츠 영화에는 특유의 감동이 있다. 우리를 열광하게 했던 '우생순'(2008)이나 '국가대표'(2009)가 그랬듯 결과를 알면서도 긴장하게 된다. 온갖 난관을 거쳐 마침내 우승(아닌 경우도 있지만)하게 되는 해피엔딩은 마음을 후련하게 한다. '라라걸'(Ride Like a Girl)은 경마대회를 소재로 한 스포츠 영화다. 2015년 호주 멜버른 컵에서 여성 최초로 우승한 미셸 페인의 이야기다.

미셸의 가족은 모두 경마 산업과 관련되어 있다. 오빠와 언니는 말을 타는 기수이고, 아버지는 노련한 트레이너다. 어릴 적 엄마를 잃은 10남매의 막내 미셸, 그녀는 누구보다 말을 좋아하고, 승마에 열정을 보인다. 하지만 낙마 사고로 가족을 잃은 아버지는, 미셸의 훈련을 말린다. 사이가 나빠지지만, 그녀는 뜻을 굽히지 않고 트레이너를 찾아 나선다. 미셸의 최종 목표는 멜버른 컵 우승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거친 경마대회로 알려진 멜버른 컵은 나라를 멈추게 하는 경기(The Race Stop Nation)로 불린다. 그만큼 남녀노소 모두가 열광하는 축제다. 1861년에 시작된,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성 기수는 단 4명이다. 미셸의 우승 확률은 1%, 하지만 그녀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당당히 승리한다. 3200번 출전, 16번 골절, 7번의 낙마 끝에 쟁취한 승리였다. 낙마 사고에서 심각한 전신마비를 겪기도 했으나, 모든 걸 뛰어넘었다. 자신처럼 숱한 부상을 딛고선 말 '프린스 오브 펜젠스'를 만나고 나서였다.

그녀는 여성의 출전을 반대하는 관계자들에게 "힘이 전부가 아니죠"라고 외친다. "말을 이해하는 것과 필드를 읽는 기술이 필요해요"라며, 무엇보다 필요한 건 '인내심'이라 말한다. 그것은 사실 아버지의 가르침이었다. 아버지 패디는 '빠르고 강하게 달리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고, '기적의 틈을 찾을 때까지 자신만의 질주를 멈추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때를 기다리며 인내하라고.

영화의 제목은 '#LIKEAGIRL'에서 따왔다. '#나답게#여자답게 승리하라'는 글로벌 캠페인인데 '#여자답게'는 약함을 상징하는 부정적 표현을 긍정적으로 바꾼 것이다. 이 영화는 소위 '트리플 F' 등급이다. 각본, 감독, 주연 모두가 여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굳이 페미니즘 시각에 가두어 놓고 싶지 않다. 좋은 스포츠 영화가 그렇듯 인생의 소중한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질주하는 말을 보는 시원함과 함께, 온갖 고난을 이겨내며 때를 기다리는 용기, 그리고 열정이 있다. '꿈을 향해 달리다 넘어져 본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포스터 문구대로다. 1등으로 달리다 꼴찌로 들어오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태연하게 말한다. 꼴찌에서 1등이 될 때도 있는 거라고. 그것이 바로 우승 확률 1%였던 미셸의 이야기였다.

막내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가족의 따뜻함이 담겨 있고, 다운증후군인 오빠 스티비의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마필 관리사인 스티비 역은, 본인이 직접 출연해서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감동적이고 따뜻한 가족 영화를 찾는 이에게 추천할 만하다. 가슴이 뻥 뚫릴 듯한 말들의 질주 장면과 우승 장면은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한다.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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