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일의 소수의견] 명품소비 뒤집어 보기

  • 남재일 경북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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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21  |  수정 2023-04-21 06:57  |  발행일 2023-04-21 제23면

[남재일의 소수의견] 명품소비 뒤집어 보기
경북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10년 사이 한국의 명품 시장은 10배 정도의 폭발적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는 국민 1인당 평균 명품소비 액수 325달러(40만원)로 전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이 소식을 전하는 언론의 논조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명품 소비 자체를 과소비, 과시소비, 보복소비 등 합리적인 소비가 아닌 어리석은 과잉의 행위로 인식했고, 부자들보다 중산층이나 젊은이의 명품소비에 한결 더 비판적이었다. 부자가 하면 합리적인 소비, 빈자가 하면 비합리적인 과소비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명품소비의 합리성 여부를 명품 가격을 감당할만한 경제력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빈자의 명품 소비만 조롱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명품구매를 통해 얻는 효용의 크기를 기준으로 하고, 심리적 만족을 효용에 포함하면 빈자의 명품구매도 나름의 합리성을 가진다. 일상적으로 명품을 구매하는 것보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명품을 구매한 것이 심리적 만족도는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명품소비는 생필품 소비와 같은 단순한 경제행위가 아니다. 생필품 치약은 오로지 양치질을 위해 산다. 하지만 에르메스 핸드백은 소지품 담을 공간 마련보다 명품 브랜드의 소유 자체가 목적이다. 양치질을 하려고 죽염치약을 사는 것은 치약의 사용가치를 소비하는 것이지만, 에르메스 핸드백을 사는 것은 에르메스라는 명품의 '기호가치'를 소비하는 것이다. 에르메스 핸드백을 들고 다니면 '명품을 살 만큼 부유하고 세련된 사람'으로 자신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사용가치보다 기호가치를 우선적 기준으로 소비하면서 타인이 자신을 부유층으로 봐줄 것을 기대하는 '파노플리 효과'의 추구를 현대 소비사회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꼽았다.

그런데 기호가치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소비행태가 현대에 와서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19세기 말 저술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은 19세기에도 부자들의 '과시소비' 행태가 상당했음을 말해 준다. 사실 부자들의 소비는 과거에도 사용가치보다 기호가치를 더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구별짓기'에서 주장하듯이, 부자들의 소비취향을 결정짓는 가장 큰 변수는 하층민과 자신들을 구별하는 계급의 경계선을 선명하게 긋는 것이었다.

소비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부자들은 오래전부터 이 사실을 의식하고 활용해왔다. 부자들의 과시소비는 사실상 자신의 계급적 위상을 공고화하기 위한 일종의 구별짓기다. 대중들은 과시소비를 비난하지만 과시소비를 할 수 있는 지위를 욕망한다. 나아가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계급에 맞는 방식으로 과시소비를 변형한다. 명품 소비의 동인은 부자들이 오랫동안 과시소비를 통해 구축한 부유층의 위상을 명품 소비로 단기간에 얻고자 하는 것이다. 외양만 부유층 행세를 해도 부유층으로 인정받는 파노플리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물질주의와 SNS 소통이 지배적인 곳에서는 효율적인 생존전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인 부유층의 구별짓기는 명품소비를 벗어나는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새삼스럽게 자신의 사회경제적 위상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거부(巨富)에게 명품은 기호가치가 없다. 오히려 소박한 자연주의 식단 같은 것이 '물질에 휘둘리지 않는 부자의 품위'를 전하는 기호가 될 수 있다.

얼마 전에 300~400만원짜리 명품패딩을 입고 3천900원짜리 도시락을 사는 청년의 영상이 cctv에 잡혀 화제가 된 바 있다. 그의 사연이 궁금하다.경북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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