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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세 전 대구사이버대 총장 |
미국경제는 지금 트릴레마(trilemma)에 봉착하고 있다. 즉 인플레, 금융위기 그리고 부채위기 등 세 개의 함정에 빠질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인플레는 조금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5%의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편 금융위기도 최근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에서 보았듯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부채위기도 GDP의 17%를 차지하는 재정적자와 120%에 달하는 대외부채로 인하여 의회에서 주기적으로 부채상한법안을 통과시키니 마느니 하는 논란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트릴레마 즉 삼중고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정책대안이 없다는 것이 미국 정부당국의 고민이다. 인플레를 제압하기 위해 고금리정책을 시행하면 경기침체와 함께 이자부담으로 미재정적자는 더욱 누증하여 지불불능의 부채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많다. 한편 금융위기를 예방하고 경기를 유지하기 위해 금리인하 혹은 현 수준을 유지한다면 인플레를 막기 어렵다. 또한 언제 점화될지도 모르는 부채위기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인플레를 지속시키려고 할지도 모른다. 인플레야말로 채무자인 미정부의 부채부담을 줄이는 묘책이기 때문이다. 미연준에서는 소위 분리원칙으로 고금리정책을 쓰되 도산가능성이 있는 은행에 대해서는 유동성을 지원하는 편법을 고수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금융시장을 왜곡시키는 그야말로 병 주고 약 주는 처방에 불과하다. 닥터 둠(doom)으로 알려진 뉴욕대의 누리엘 교수는 결국 미국은 고통스럽지만 스태그플레이션적인 부채위기를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단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미국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도 인플레, 금융안정성 위기, 재정적자와 부채증가로 인한 재정건전성 위기 등 트릴레마에 직면해 있다. 한국도 그동안 인플레를 제압하고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고수하여 왔다. 그 결과 내수부진, 수출부진과 같은 성장불황을 겪고 있다. 한편 고금리로 인하여 저축은행을 비롯한 일부 금융권의 부실로 인하여 금융안정성이 훼손되고 있다. 또한 문재인 정부 때 400조원이 넘는 누적재정적자로 인하여 GDP 대비 50%가 넘는 1천조원의 국가부채로 재정건정성이 많이 훼손되어 재정건전성 위기도 잠재적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금리의 유지는 정부의 이자부담 증가로 재정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트릴레마는 미국의 트릴레마보다는 정책선택이 비교적 용이해 보인다. 한국의 인플레는 미국의 인플레보다는 낮고 반면 성장불황은 더 심하다. 따라서 금리인하로 인한 하방리스크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금융당국은 금융수요자인 주택건설산업과 가계부채의 부실로 인한 금융안정성 훼손을 막기 위하여 대출금리 인하를 유도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고금리를 유지한 채 대출금리만 인하하면 금융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왜곡될 가능성이 많다. 다행히 한미금리 격차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환율은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 따라서 기준금리와 대출금리의 수렴을 통하여 금융시장을 정상화할 필요성이 있다.
이영세 전 대구사이버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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