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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
작년은 한국이 본격적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한 지 60년이 된 해였다. 제1차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된 1962년 이래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 경제는 7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국가 발전의 청사진을 마련하고 기업·근로자 등 국민 전체가 힘을 합해 석유파동,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극복하며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개발도상국 중 유일하게 선진국 진입의 초입에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산업적으로 보면 가발, 신발 수출국에서 조선, 자동차, 가전을 넘어 반도체, 휴대폰 등 첨단 IT 제품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최근 다시 큰 물결이 일고 있다. 전 세계가 한국의 콘텐츠를 주목하고 있다. 이미 BTS는 K팝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고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의 영화, 드라마, 웹툰, 게임 등은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실제 콘텐츠 수출은 2021년 기준 124.5억달러로 가전(86.7억달러), 2차전지(86.7억달러)를 앞지르고 있다. 미디어·콘텐츠 산업은 기술과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만들어내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며, 콘텐츠 향유를 통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경제적인 잠재력도 엄청난 분야이다. 특히, 한국인 특유의 창의력은 콘텐츠의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
다만, 아쉽게도 국내 시장 환경은 녹록지 않다. 가장 큰 위협은 넷플리스와 같은 글로벌 OTT의 미디어 시장 장악이다. 넷플릭스는 국내 콘텐츠 투자로 저작권을 확보한 후 글로벌 유통으로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다. 예컨대 약 30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오징어 게임은 이후 약 1조2천400억원 이상의 수익을 가져다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넷플릭스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 IP 확보를 위해 제작비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있는데, 이에 대응해야 하는 국내 OTT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대표적 OTT인 티빙의 작년 매출은 2천475억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88.2% 성장했지만, 영업적자는 1천191억원으로 2021년보다 56.2%나 늘었다. 제작비 투자가 급증한 탓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부 콘텐츠의 성공에 자만하지 말고 지속가능한 미디어, 콘텐츠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규제 개혁이다. 콘텐츠가 글로벌화되고 있는 지금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규제를 글로벌 수준에 맞추지 않고 있는 것은 마치 발목을 묶고 경주에 나가라는 것과 같다. 다음은 국내 토종 미디어 플랫폼 지원이다. 미디어는 콘텐츠 제작 주체이자 유통 플랫폼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이 만든 콘텐츠를 해외 플랫폼을 통해 유통시키는 것은 플랫폼 종속이라는 문제를 낳는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쟁력이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 IP를 확보하는 것이다. 민관이 함께 대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투자해야 할 것이다.
이제 미디어, 콘텐츠 분야를 한국의 수출주력산업이자 미래먹거리 산업으로 삼고 전 국가적인 지원을 해야 할 시기이다. 이번에 구성된 총리 소속의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가 이런 역할의 구심점이 되기 바란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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