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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일(세계화전략연구소 객원교수) |
반도체는 '산업의 쌀'로 불릴 만큼 스마트폰·컴퓨터·자동차·우주선 등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다. 한국은 이 반도체 덕분에 위상이 높아졌고 선진국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 세계 반도체 생산체제 변화로 '반도체 1등 국가'라는 실체가 흔들리고 있다. 여야를 떠나 이 문제를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
반도체는 한국에서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대만 TSMC에서 생산하는 시스템 반도체로 나뉜다. 반면 설계는 미국이 꽉 쥐고 있다. 결국 미국은 설계만 하고 공정이 힘든 제조는 다른 나라에 맡기는 구조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일본이 생산을 도맡았다. 하지만 일본이 너무 클 것을 우려한 미국이 한국과 대만에서 생산하도록 했다. 대신 일본은 반도체를 만드는 소재·부품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국과 대만은 일본·미국·네덜란드로부터 소재·부품·장비를 수입해 반도체를 생산한다. 즉 일본은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필수인 소재·부품·장비를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반도체를 제조하는 기술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오랫동안 경제의 핵심은 석유였지만 지금부터 향후 50년은 반도체가 핵심이 될 것이다. 미국은 패권경쟁에서 반도체만 좌지우지하면 중국쯤은 상대가 안 된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지정학적으로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와 대만의 시스템 반도체가 아시아에 있다는 데 대해 불안을 느낀다. 중국이나 북한의 예상하지 못할 도발을 우려해 반도체와 배터리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유치하려는 전략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미국은 '반도체 보조금'을 미끼로 아시아에 있는 생산기지를 자국 내로 옮기고 종국에는 미국을 생산 기지화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굴기에 일본도 자극을 받았다. 일본은 차제에 반도체 생산을 재개하기 위해 대만 TSMC반도체와 제휴하는 등 국가 차원에서 자국 내 반도체 공장 투자에 나서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내 반도체 시설 건립 보조금 390억달러(약 50조원) 책정 등을 골자로 하는 반도체지원법(칩스법)에 서명했다. 지원금을 받는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 내 설비투자 금지, 기업의 초과이익 공유(75%), 사실상 기업 기밀 공개나 마찬가지인 연구개발(R&D)까지 미 정부당국에 공개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도대체 경제학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며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비판한다.
한국의 반도체 성공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최첨단 메모리 반도체 생산기지라는 독보적 지위가 위협받고 있다. 반도체 패권 전쟁엔 우방이 없다. 우리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 원천기술이 미국에 있고, 미래 신기술을 만들었을 때 미국의 요구를 거절한 기업은 제외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한국·대만 기업은 보조금을 받고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응방안은 뭘까.
첫째 기술의 고도화, 즉 극초단계의 높은 기술을 개발·보유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와 관련 지난 3월 대통령 주재 제14차 비상경제 민생회의에서 정부가 밝힌 세계 최대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경기도 용인에 삼성전자 300조원 투입)을 비롯해 전국 15곳의 국가산업단지 조성 및 반도체·자동차 등 미래 6대 핵심산업 육성 계획은 환영할 일이다. 둘째는 26일 예정된 한미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반도체전략과 관련해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외교력 발휘다. 셋째는 반도체 생산에 필수인 미국의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국내에 유치해 미래 반도체 생산에 차질 없도록 빅딜해야 한다.
황무일(세계화전략연구소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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