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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덕 (시인) |
문득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라는 질문에 주변을 둘러본다. 문명을 이루는 물체와 공간, 사람들 그리고 창밖을 날아가는 새를 따라 나무와 하늘, 구름들이 보인다. 보이지 않는 세계도 있다. 관계와 언어 같은 것들. 그러나 오늘만큼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픽토그램. 픽토그램은 그림을 뜻하는 픽토(picto)와 전보를 뜻하는 텔레그램(telegram)의 합성어다. 누구나 그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도록 만들어진 그림문자다. 그러고 보니 교실 한편의 붉은색 소화기 픽토그램은 강렬하다. 복도의 한 모퉁이 매일 같은 자리에서 달리고 있는 비상구 초록색 사람도 눈길이 간다.
시에서는 비록 그림문자는 아니지만, 그림처럼 느껴져서 특별한 인상을 준 작품이 기억난다. 바로 이상의 시 '▽의 유희'인데 "종이로만든배암이종이로만든배암이라고하면/ ▽은배암이다// ▽은춤을추었다// ▽의웃음을웃는것은파격이어서우스웠다(이하생략)" 한때 필자는 이 ▽이 뱀의 머리보다 더 이미지가 선명해서 ▽에 웃는 뱀의 표정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림이나 기호는 언어에 비해 보다 직관적이다. 언어보다 더 전달력이 빠른 이 그림문자의 최초는 기원전 33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 그림문자가 오랜 세월이 지난 현재에도 다양한 기능을 하고 있음은 자못 상징적이다. 진화된 유전자처럼. 오늘 아침 나는 '엘리베이터 추락 위험' 픽토그램부터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안전 수칙' 픽토그램, '자전거 이용' 픽토그램 등을 지나 다시 버스 안팎의 픽토그램들을 살펴본다. 픽토그램 산책을 한다. 물론 그림문자의 확장된 범위로 본다면 사이버공간에선 카카오톡 픽토그램(이모티콘)을 사용하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픽토그램도 이용한다.
얼마 전 옛 제자로부터 마음이 담긴 수제 그림문자를 카카오톡으로 전해 받았다. 그 자체로 아주 고맙고 감동스러웠다. 마치 특별한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복제의 시대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픽토그램은 유용하다. 더불어 누군가로부터 전해 받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그림문자는 너와 나 사이를 아주 빛나게 만든다. 화창한 봄날, 나만의 소박한 그림문자를 그려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달해 보면 참 좋겠다. 이 시의 '너'처럼 말이다. "너는 말했다/ 아름다운 밤들이 모래처럼 쌓인/ 사막이 있을 거야// 밤이 에나멜 구두처럼 반짝거렸다/ 맨발로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진은영 시,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중)
권기덕 (시인)

권기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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