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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
우크라이나 슬로비안스크에 사는 나탈리야의 꿈은 소박했다. 그 꿈은 남편의 곱슬머리, 미소, 꿈꾸는 듯한 눈매를 닮은 아이 다섯을 낳아 그림과 도예를 가르치고, 함께 근처의 숲을 산책하는 것이었다. 러시아가 침공을 하였다. 남편이 자원입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사통지를 받자 그녀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첫아기 임신 3개월째였다. 가슴이 찢어졌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행히 남편이 입대 전에 정자를 극저온 보존을 해 두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갔지만 그의 자손이 태어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병사들의 정자 보존은 개인적 기대만큼 국가적 기대도 크다. 정자를 맡기면 병사들은 전장에서 침착하고 용감해지며 그 배우자도 위안을 얻는다. 러시아는 근본적으로 '우크라이나'라는 국가와 국민은 다 '허구'라고 우겨왔다. 우크라이나 땅은 러시아의 일부이지 따로 그런 나라나 국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지우려는 시도다. 반대로 우크라이나는 혈통을 굳건히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크라이나 의회가 정자 보관 사업을 국가적 사업으로 입법화하려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미 몇몇 병원에서는 자체 부담으로 이 사업을 시행 중이며 키이우의 한 클리닉에서는 매주 10명 정도가 정자를 위탁한다고 한다. SNS에서는 나탈리야의 말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분들이 죽더라도 우리는 그들의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고, 애국 전몰자의 아이는 꼭 애국자가 됩니다." 이 메시지에 놀란 러시아의 한 기자는 이렇게 썼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공포증을 가진 우크라이나인들을 양산하는 인공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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