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시대공감] 서세원과 개그맨의 시대

  •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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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28  |  수정 2023-04-28 06:58  |  발행일 2023-04-28 제22면
한때 큰 웃음줬던 희극인

마지막도 논란속에서 떠나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는데

미스터리 파헤치기식 보도

논란속 캐릭터 부각돼 씁쓸

[하재근의 시대공감] 서세원과 개그맨의 시대
하재근 문화평론가

최근 서세원이 캄보디아에서 갑자기 숨졌다. 그 후 언론이 관련 사안들을 미스터리 파헤치기 식으로 보도하면서 논란을 증폭시켰고, 장례 절차나 유족들 간의 이견에 대해서도 논란 보도를 이어나갔다. 물론 진실은 규명해야 하고 서세원이 유명인이기 때문에 관심을 피할 순 없지만 그래도 언론 보도가 조금 과도해 보인다. 아무래도 서세원이 한국에서 워낙 큰 논란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언론이 계속해서 그를 논란 속 캐릭터로 부각한 것 같다. 한때 국민에게 큰 웃음을 준 희극인이었는데 마지막까지 논란 속에서 떠났다.

서세원은 1979년 TBC 라디오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데뷔해 라디오 진행자로 활동했다. 그러다 MBC로 활동무대를 옮겨 1980년대 정상급 인기 개그맨으로 활약했다. '영11' '청춘행진곡'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에 출연하면서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셔', 유명 목회자의 말투를 흉내 낸 '셔셔셔' '믿습니까' 등의 대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80년대는 코미디계에 새바람이 불었던 시기다. 젊은 코미디언들이 '우리는 바보 연기나 몸으로 웃기는 코미디언이 아닌 말로 웃기는 개그맨'이라며 새 물결을 형성했다. 코미디판 뉴웨이브였던 셈이다.

우리나라는 기적적인 속도로 급속히 경제개발을 했는데 그에 따라 사회문화적으로도 초고속 변화가 일어났다. 영화계에서도 70년대에 비해 80년대 영화들은 확연히 분위기가 달랐고, 가요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변화가 코미디계에선 아예 해당 부문의 이름까지 '개그'로 바꿔버리며 이전 세대와 완전히 선을 긋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그전까지 코미디는 유독 천시받는 분위기가 있었다. 코미디언들이 바보 연기 등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로 나오며 더 그런 분위기가 강해졌을 것이다. 그에 따라 자존감 강한 젊은 신인들의 반발심이 커졌고 결국 그들은 개그맨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판을 통째로 갈아버렸다. 그러면서 심형래, 서세원, 주병진, 이경규, 김형곤, 최양락 등 젊은 희극인들이 국민적 사랑을 받게 됐다. 이 중에서 심형래는 전통적인 코미디 바보 연기의 맥을 이었다고 할 수 있고, 말로 웃기는 개그맨들의 선두에 자리매김했던 이가 서세원이었다.

요즘 개그프로그램 스타는 예능 스타, 드라마 스타에 비해 마이너 스타로 인식된다. 하지만 80년대의 개그 스타는 국민스타급 위상이었다. 그 정도로 국민에게 큰 웃음을 줬다는 이야기다.

서세원은 90년대엔 예능 토크쇼 사회자로 변신했다. '서세원쇼'로 또다시 전성기를 연 것이다. 그전까지 예능 사회는 전문 사회자들이 주로 봤었다. 서세원 이후 개그맨 출신들이 예능 사회계를 주름잡게 된다. 그리고 '서세원쇼'에서 재능을 알린 유재석이 개그맨 출신 국민MC로 예능 초전성시대를 열었다. 강호동, 신동엽 등 국민MC급 진행자들이 모두 개그맨 출신으로 이루어져 '말로 웃긴다'는 80년대 개그맨들의 목표가 결국 실현된 느낌이다.

이렇게 일세를 풍미했던 서세원은 영화사업 과정에서 부정 비리에 연루돼 방송계에서 사실상 퇴출되고 말았다. 그 후 전 부인 서정희를 폭행했다는 논란에 휘말리면서 국민 공적 수준으로 여론이 악화됐다. 한국에선 더 이상 사업을 해나가기 힘든 지경이 되었고, 새로 꾸린 가정의 부인과 어린 딸과 함께 캄보디아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재기하기 위해 사업에 매진했지만 어려움을 겪었고 건강까지 잃었다고 한다. 지금 현 부인은 혼절 지경이고 어린 딸에겐 아버지의 죽음을 차마 알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정확한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것과 별개로 개그맨의 시대를 이끌었던 서세원의 마지막 길이 신산하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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