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제주 4·3은 김일성의 지시로 일어난 것인가?

  •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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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28  |  수정 2023-04-28 11:09  |  발행일 2023-04-28 제22면
탈북 국회의원 발언에 시끌

대한민국 국민이 된 지금도

北 교육 사실로 믿는게 문제

정치목적 상처 덧내면 안돼

평화·인권 관점서 바라봐야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2월13일 "제주 4·3사건은 명백히 북한 김일성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발언에 대해 희생자유족회는 물론, 대부분의 제주 사회가 나서서 비판하고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제주도당도, 그의 발언은 제주도민의 뜻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중앙당에 합당한 조치를 요청하기에 이르렀어요.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중대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유가족들에게 사과를 한 노무현과 특별법 개정으로 배·보상을 결정한 문재인뿐 아니라, 4월3일을 국가추념일로 제정한 박근혜 등 전직 대통령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어요. 그리고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도, 법무부와 국방부를 포함한 6개 부처의 장관이 그 위원회에 당연직 위원으로 참석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당사자는 사과 요구를 무시한 채 도발을 계속하고 있어요. "유족들이 제가 한 행보와 발언 중에 어느 부분을 반발하는지 들어보지 못했다"면서, 지난 3일에는 '유족이나 피해자 단체가 내 발언의 취지를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심지어 조롱까지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당 지도부의 자제 지시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일관하고 있어요.

 

물론 그의 발언이 충분한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면 인정해야겠지요. 그럼에도 지금까지 오로지 "유튜브에 있는 북한 영화와 드라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설명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 제주 4·3을 조사하고 연구해 온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은 제주 4·3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거나 제주도민의 자발적 봉기로 설명하는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동안의 제주 4·3에 대한 연구와 조사에 따르면, 김일성은 물론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에 의한 것도 아니라 남로당 제주도당의 독자적이고 돌출적인 행동이었다는 결론입니다. 2022년에 여야합의로 개정된 특별법에서도 '제주 4·3사건이란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지요. 

 

북한의 현대사 서술은 철저하게 김일성 우상화와 북한 정권의 정당성 중심으로 서술돼 있어서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이 된 다음에도 북한에서 받은 교육을 여전히 사실로 믿고 있다면 큰 문제이지요. 게다가 그것을 근거로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되어 온 대한민국의 연구성과와 정치적 합의를 뒤엎으려 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심지어 그는 최근에 백범의 통일정부 수립 노력을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략에 이용당한 것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여전히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믿는다면 그게 바로 종북이라는 말까지 나오지요. 잘 모르면 입 다물고 열심히 공부해서 이제라도 따라오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 마땅한 태도일 것입니다. 

 

제주도민들 특히 유가족들은 오랜 세월 동안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혀 큰 고통을 받아 왔어요.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으로 인정을 받고 명예회복이 된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배·보상까지 받게 되었고 사법적 재심을 통해 억울했던 과거로부터 벗어나려는 시점이지요. 그런데 정치적 목적에 의해 그동안의 상처와 아픔이 다시 덧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제 제주 4·3은 평화와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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