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의 트렌드 스토리] '레드와인 성지' 프랑스 보르도

  • 이재훈 영진전문대 호텔항공관광과 교수
  • |
  • 입력 2023-05-05  |  수정 2023-05-05 07:57  |  발행일 2023-05-05 제37면
佛 보르도 최고 포도밭서 생산…1등급 와인 5개에 부여한 '5대 샤토'

[이재훈의 트렌드 스토리] 레드와인 성지 프랑스 보르도
〈게티이미지 뱅크〉
[이재훈의 트렌드 스토리] 레드와인 성지 프랑스 보르도
이재훈 (영진전문대 호텔항공관광과 교수)

와인의 품질을 결정하는 요소에는 햇빛, 온도, 강수량 등의 환경 요소나 포도 품종 등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Vineyard라 일컫는 포도밭이다. 비슷한 용어로는 불어 Terroir(떼루아)가 있다. '떼루아'란 와인에 지역 특징을 부여하는 자연적인 요소로서 지면에서 물이 배수되는 속도, 햇빛이 반사되는 정도, 경사면의 각도, 태양의 방향, 서리나 호수, 강의 접근성을 포함한 포도의 생식 환경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좋은 포도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포도밭은 전 세계에 몇 군데 없지만, 그중 유명한 곳은 프랑스의 보르도(Bordeaux) 지역이다. 보르도는 프랑스에서도 규모가 큰 항구도시 중 하나이며, 원산지 품질 인증(AOC)을 받은 프랑스 최대 와인 산지이다.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는 '지역(Origine)'의 '이름(Appellation)'으로 와인 품질을 '통제(Controlee)'한다는 뜻이다.

보르도에서는 여러 품종의 포도가 섞인 와인만을 생산하고 있는데 각각의 포도 품종은 균형감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포도 품종에 따라 익는 시기가 다른 점을 이용하여 병충해나 흉작에 대비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각 포도밭의 토질에 적합한 포도를 2~3종류를 재배하고 이를 다시 적절한 비율로 배합하는 것이 특징이며, 이때 배합된 포도 품종을 이용한 와인은 그렇지 않은 와인보다 복합적이고 풍부한 특징을 갖고 있다.

보르도 지방에서 생산되는 우수 품질 와인에는 '보르도 등급'이 부여된다. 보르도 등급은 프랑스 와인의 원산지 표기와 관련한 등급제이다. AOC 시스템과는 별개의 등급제이며 브랜드 가치가 높은 와인에 부여된다. 보르도 지방 내에는 와인 산지로서 인가받은 지역이 20개가 있으며, 와인 생산지의 면적은 서울시 면적의 약 2배 정도이다. 라벨에는 생산지명이 부여되는데, 이때 '넓은 지역일수록 격이 낮고, 좁아질수록 격이 높다'는 원칙이 적용된다.

보르도 메독(Medoc)지구의 그랑 크뤼 클라세 와인은 1~5등급으로 구분되며, 현재는 총 61개의 생산자가 지정되어 있다. '그랑 크뤼(Grand Cru)'는 영어 'grand growth'로 '뛰어난 포도원'을, '클라세(classe)'는 영어 'class'로 등급을 뜻한다. 따라서 그랑 크뤼 클라세 와인이란 '우수한 포도원의 등급'을 의미한다. 이때 생산자의 개념으로 샤토(Chateau)가 사용된다. 샤토는 불어로 '성(Castle)'을 의미한다. 과거 보르도에서는 성을 가진 소유주가 거대한 포도밭을 보유하고 그 포도로 와인을 생산하는데, 이 모든 과정이 한 곳에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샤토는 현재의 '와이너리' 개념과 유사하다. 그중 1등급(First Growths)을 부여받은 와인 5개를 '5대 샤토'라고 부른다.

1. 샤토 무똥-로칠드

샤토 무똥 로칠드(Chateau Mouton-Rothschild)는 본래 2등급 와인이었다는 점이 특별하다. 1885년 파리박람회 당시 1등급에 포함되지 못하였지만, 해당 샤토의 주인이 100년에 걸쳐 와인의 품질을 높인 결과로 1973년에 1등급으로 승급했다. 무통(Mouton)은 프랑스어로 '양(sheep)', '로칠드(Rothschild)'는 독일어로 '붉은 방패'를 의미한다. 무똥 로칠드를 생산하고 있는 바롱 필립 드 로칠드사(Baron Philippe de Rothschild S.A.)는 현재 세계의 7개국에 지사가 있으며, 보르도 와인 수출 1위이다.

샤토 무똥 로칠드는 카베르네 쇼비뇽, 메를로 등의 포도 품종이 포함되어 있으며, 짙은 가닛(garnet·석류석)의 색조와 잘 익은 검은 과실의 향에 이은 젖은 돌, 팔각(아니세) 등의 향이 특징이다.

2. 샤토 라피트-로칠드

'라피트(lafite)'는 가스콩어로 '작은 언덕'을 의미한다. 라피트 로칠드는 보르도 1등급 와인 중 세계에서 가장 비싼 레드 와인으로서 꾸준히 생산되고 있다. 1823년까지는 '샤토 라피트'로만 불리다가 1868년 영국 출신의 은행가이자 포도재배학 전공자인 제임스 로칠드로 소유주가 바뀌면서 와인의 이름도 '샤토 라피트 로칠드'로 바뀌었다. 보르도 북서쪽 포이약의 포도원에서 생산된다.

라피트 로칠드는 보통 카베르네 쇼비뇽 92%, 메를로 8% 등의 포도 품종으로 블렌딩되어 있다. 특히 카베르네 쇼비뇽은 40년 정도가 기본적이며, 가장 오래된 포도나무는 90년 정도가 되었다. 이 중 매년 1%를 새로 심고 2그루의 나무에서 생산된 포도로 한 병을 생산하는 방식이 특징이다.

3. 샤토 라투르

'탑(tower)'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투르(tour)'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샤토 라투르는 권력을 상징하는 와인이다. 현재는 존재하지 않지만, 1620년대 원형 탑(라 투르 드 생-랑베르)이 세워졌다. "고귀하고 황홀한 경지"라는 찬사가 뒤따르는데, 1855년 등급 분류 시 처음부터 1등급을 받으며 '와인의 왕'이라고 불렸다. 보르도 포이약에 포도원이 위치해 있으며 매년 22만병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75%는 카베르네 쇼비뇽, 20%는 메를로가 블렌딩되어 있다. 다크 루비에서 짙은 퍼플 컬러와 풍부한 타닌이 특징이다.

샤토 라투르는 '이건희 와인'이라고도 불렸다. 2007년 전경련 모임에서 고(故) 이건희 회장이 회장단에게 82년산 샤토 라투르를 대접하며 유명해졌다. 정규응 소믈리에는 82년 빈티지는 보르도 지역에서 나온 최고의 빈티지이자 와인이라고 설명했다.

4. 샤토 오 브리옹

'오 브리옹(Aubrion)'은 자갈이 많은 언덕을 의미하며, '오(Haut)'는 높다는 의미이다. 61개의 샤토가 모두 메독 지역에 있는데, 오 브리옹만이 그라브의 빼싹 지역에서 생산된다. 까베르네 소비뇽이 대부분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다른 샤토와는 달리 메를로가 56%, 까베르네 쇼비뇽이 37.5%가 블렌딩되어 있다. 루비빛과 바닐라 향이 특징이다.

오 브리옹은 '프랑스를 구한 와인'으로 유명하다. 나폴레옹이 1814년에 패배한 이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는 프랑스의 배상에 관한 회의가 진행되었다.

이때 외교관에게 샤토 오 브리옹이 제공되었는데, 와인과 함께 즐긴 왈츠와 음식은 당시 4개국 대표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프랑스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게 되었다.

5. 샤토 마고

샤토 마고는 메독 최남단에 위치한 마고(Margaux) 지역에서 생산되며, 등급 분류 심사 시 유일하게 생산된 지역의 이름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보르도의 포이약을 포함한 세 마을은 서로 연결돼 있지만, 마고만이 남쪽에 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와인과 차별화되는 맛을 지녔다. 카베르네 소비뇽이 대략 90%, 메를로가 8%로 블렌딩되었으며, 짙은 루비 컬러와 블랙베리, 장미 향이 특징이다.

샤토 마고는 '와인의 여왕'이라고 불리며,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 전 대통령이 '보르도에서 이보다 더 좋은 와인은 없다'는 찬사를 남겼다. 혹자들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것이 와인이라고 한다. 수많은 별 중에 보르도 그랑 크뤼 클라세 1등급 와인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는 별 중의 별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겐 아주 특별한 기념을 위한 날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딸아이가 성인이 되는 날이라든지, 만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라든지 특별한 날을 위해 와인 한 병 정도는 준비해 두는 것은 어떨까.

영진전문대 호텔항공관광과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