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은희 국회의원 (국민의힘) |
"'더 글로리' 보면서 이상한 점 못 느꼈어요" "글쎄요. 뭔데요?" "등장인물들 아버지가 안 보인다는 거에요". 친지와 대화를 나누면서 "맞다!" 싶었다. 목사 딸의 아버지가 나왔지만 아주 잠시뿐이다. 엄마들의 비중과는 비교가 안 된다. 넷플릭스 1위를 휩쓴 글로벌 인기 드라마에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니! '현대사회는 아버지 없는 사회(Fatherless Society)'라는 말이 실감 났다. 아버지들이 겉돌고 있다. 2020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엄마와 하루 30분 이상 대화한다'가 76%인 반면 아버지와는 40%에 불과했다. 고교생 다섯 명 중 한 명은 '아버지와 하루 단 1분도 대화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도 있었다. '아버지 결핍증'이란 공통의 질병은 가정 내 소통 단절을 넘어 사회적 병폐로 드러나기도 한다. 아버지들의 기를 살려주는 정책이 시급하다. 대한민국의 중추인 아버지들이 살아야 가정이 살고, 나라가 산다. 개척자의 마음으로 구청장 시절 시작한 것이 서초구 '아버지센터'다. 자치단체로는 전국 최초로 아버지들의 전용 공간을 마련해 힐링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2016년 8월 문을 열었는데 강좌마다 신청자가 몰려 조기 마감할 정도였다. 그중 단연 인기는 '아빠는 최고 요리사'란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연령층의 아버지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어슷썰기가 뭐야?"라며 칼질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짠해지기도 한다.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아빠들의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외롭고 힘들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 상황 속에서 아버지들은 가족을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역부족이다. 중장년층 남성들은 점점 직장과 사회에서 밀려나고, 가정에서도 외면당하기 일쑤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지난해 자료를 보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치료받은 50·60대 남성이 2017년 16만여 명에서 2021년 19만여 명으로 16%나 늘었다. 또 사별·이혼 등으로 홀로 사는 중장년 남성도 같은 기간 85만여 명에서 115만여 명으로 급증했다. 이런 위기 지표에도 불구하고, 중장년층을 위한 정책개발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서초구의 아버지센터처럼 지치고 외로운 아버지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행복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정책이 더 많이 필요한 이유다. 아버지들이 힘 나야 대한민국이 힘 나고, 중장년층이 튼튼해야 나라도 튼튼해진다.
여의도에 와서도 행정안전위원회와 운영위, 국회 민생경제안정특별위원회 외에 두 개의 특위를 더 맡아 '또 은희'로 불릴 만큼 바쁘지만, 여성가족위원회에 자원해 상임위 활동에 열심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새가 두 날개로 날듯 여성·가족의 행복과 아버지들의 행복은 한 방향을 향해 함께 간다. '한부모가족지원법' 개정안을 제출하면서도 같은 마음이었다. 현재는 일시 지원 복지시설에 엄마와 아동만 입소할 수 있으나 아버지도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 등원 1년 만인 지난 3월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됐다. 아버지 혼자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므로, 시대가 바뀌었으면 법도 바뀌어야 마땅하다. 드라마 '더 글로리'의 작가는 "피해자가 되찾고자 하는 것은 잃어버린 존엄과 명예, 영광"이라 했다. 이 시대 아버지들에게 필요한 것도 같은 종류가 아닐까. 우리의 아버지들이 '글로리'를 되찾을 때 우리 사회도 더욱 밝고 훈훈해질 것이다. 자존감을 되찾은 아버지들이 활짝 웃는 장면의 엔딩롤 한 귀퉁이에 '또 은희'란 이름이 들어 있으면 더없이 영광스럽겠다.
조은희 국회의원 (국민의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