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한일관계 새로운 지평 열어야

  • 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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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08  |  수정 2023-05-08 06:53  |  발행일 2023-05-08 제26면
과거로 견원지간이 되기엔

지리·문화·경제적 깊은 관계

韓, 국력 길러 일본 과오 막아

日, 사죄가 선린의 새장 열어

양국의 지혜 있는 결단 기대

[아침을 열며] 한일관계 새로운 지평 열어야
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윤석열 대통령의 용기 있는 결단에 대해 보답하는 마음으로 답방을 결심했다"고 했다. '용기 있는 결단'에 대한 '지혜로운 답방'이 되길 기대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의 불교, 도자기 등에서 보듯이 한국은 분명 일본의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일본은 임진왜란, 일제 식민통치에서 보듯 한국에 너무나 큰 아픔과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렇다고 견원지간으로 살아가기에는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는 물론 문화, 경제적으로 너무나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최근에는 미중 경제전쟁과 러·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새로운 냉전질서가 형성되고, 북중러 동맹관계가 강화되고 있다. 세계질서의 이러한 재편은 한일 양국의 경제 및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일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하는 이유이다.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해법과 방일에 대해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한 것은 그만큼 한일 관계가 최근 몇 년간 견원지간으로 악화되었고, 국민정서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은 너무나 비인간적인 가학행위였기에 피해 당사자는 물론 한국인 모두에게 씻기 어려운 상처로 남아있다. 한국은 이 문제에 대하여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해 왔지만 일본은 외면해 왔다. 문재인 정권 시절 이 두 가지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 아베 정권과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한일 관계는 한일 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당시 양국 지도자는 국민과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기보다는 국민 정서를 자극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갔다. 한국에서는 권력의 중심부에서 죽창가로 반일감정을 자극하고, 친일파, 토착왜구라는 허구의 프레임을 만들어 국민을 분열시키고 한일 관계 개선을 근원적으로 차단했다. 아베 정권은 안보를 명분으로 전자산업 등의 핵심 소재, 부품, 장비의 대한국 수출규제로 한국에 대해 보복적 조치를 취했지만 일본 수출시장만 축소시켰다. 양국 지도자는 명분론에 빠져 자국과 미래에 대해 자해행위를 한 것이다.

일제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한국이 오늘날 일본에 대해 당당한 지위를 확보하게 된 것은 반일 프레임이 아니라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한국을 선진국 반열에 올린 주력산업에서 일본에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조국 근대화 비전과 전략, 산업화 역군들이 만든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삼성 이병철, 이건희 회장과 포스코 박태준 회장은 일본을 학습하여 일본을 넘어서 세계 최고 기업을 만들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 대기업의 성공은 한국과 한국인에게 자신감, 자긍심, 자존감을 심어주고, 한국의 국격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정치인들은 여기서 무엇이 진정으로 국격을 높이고 애국하는 길인가를 깊이 새겨야 한다. 반일감정을 자극하기보다는 일본에 경쟁우위를 확보하여 그들이 역사적 과오를 반복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기르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일본 정치 지도자도 양국의 국민과 미래를 위해 지혜로운 결단과 행동을 해야 한다. 강자의 논리가 야만적으로 지배했던 20세기 초 전후의 시각으로, 한국인에게 가했던 가학행위를 영구히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당시의 시대적 논리가 어떠하였든 양국 정치 지도자의 합의가 어떠하였든, 다른 나라의 인권탄압을 강하게 비판하는 선진국이라면 적어도 자신들의 선대들이 한국인에 가했던 잔혹한 폭력에 대하여 한 번쯤 진솔한 사죄를 하는 것이 선린관계의 새장을 열기 위한 과정이 아니겠는가. 기시다 총리의 지혜로운 결단을 기대한다.
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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