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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살로메 (소설가) |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는 백수(白壽)가 머잖다. 어머님은 요양원에 계시고, 엄마는 당신 집에 기거하신다. 먼저 어머님께 가는 길, 두 돌이 가까운 당신 첫 증손녀도 대동한다. 간만에 4대가 모였다. 휠체어 신세인 어머님은 경증의 치매도 앓는 중이다. 고관절과 팔꿈치 골절을 차례로 입었다는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가는귀까지 먹어 목청을 높여야 소통이 가능할 정도이다.
그나마 핏줄의 연까지 까먹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둘러선 예닐곱 식구들의 관계와 이름까지 헛갈리지 않고 구분하신다. 함께하지 못한 손주들의 안부도 척척 물으실 때는 치매 환자가 아닌 것만 같다. 그래도 작년 이맘때에 비하면 턱없이 노쇠하기만 하다. 희디희던 얼굴빛은 어두워져 있고, 오른쪽 귀에는 붉은 사마귀까지 돋았다. 가려움에 자꾸 손가락을 귀에 대며 찡그리는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하지만 당신 특유의 어떤 심지 같은 게 느껴져 불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친정엄마에게도 들른다. 엄마는 연세에 비해 건강한 편이다. 당신의 하루는 기도하고, 성경 읽고, 일기를 써도 시간이 남는다. 사람 좋아하는 엄마는 경로당 친구들 사이에 제대로 끼고 싶다. 하지만 가장 연장자이기에 환영받는 입장이 못 된다. 더구나 당신의 최애 오락은 윷놀이인데, 그곳 분위기는 '고도리'가 대세라나. 안타깝게도 민화투밖에 치지 못하는 엄마는 "젊어서 고도리도 안 배우고 뭐했냐"는 터줏할머니들의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 뒤늦게나마 어깨너머로 익힐까 싶어 기웃거리면 "형님은 어려워서 못 배워요" 한단다.
절실해진 엄마는 요즘 과외 중이다. 방문 사회복지 도우미 여사님으로부터 맹렬한 기세로 고도리를 배운다. 그것도 모자라 오랜 친구인 스무 살 아래의 젊은 할머니에게서도 가열하게 화투 과외를 받는 중이다. 알량한 효도를 하기 위해 우리 부부가 들른 그 시간에도 엄마는 선생님 앞에서 백 원짜리 화투 룰을 익히느라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이웃보다 나은 친구나 효녀는 없도다! 경로당에서 푸대접받는 초고령 신세가 애잔해 남편과 함께 엄마를 위해 패를 돌린다. 복잡하기만 한 고도리 계산식은 엄마에게 '넘사벽'의 세계일 뿐이다. 사는 동안은 사람 사이에 부대끼며 살고 싶은 욕망은 인지상정인가 보다.
건강 상태와 생활 방식은 다르지만 두 어머니에겐 공통점이 있다. 미래에 대한 의연한 자세이다.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신기한 부분이다. 오늘도 그랬듯이 두 분께 기회만 되면 혼자 있는 게 외롭지 않은지, 솔직히 죽음이 두렵지 않은지 묻곤 한다. 그렇게 한 이유는 당신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진실로 내가 그 문제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혼자가 된다는 것, 죽음에 대한 여러 상념 앞에서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대개 회피하기 일쑤이다. 한데 두 어머니는 주저함 없이 마치 준비된 사람처럼 내 어리석은 질문에 담담한 답을 주곤 한다. "내일 죽는다 해도 두려울 것도 여한도 없다." 마음공부를 마친 수련자의 깨달음처럼 두 어머니가 자주 하는 말이다. 그 연배가 지닐 수 있는 종교적 신앙심이 당신들 내면을 단단하게 했을 수도 있고, 선천적 기질에서 오는 삶의 긍정적 태도가 잠식하는 불안을 잠재웠을지도 모른다.
변덕이 심한 데다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는 나로서는 일관된 그 자세가 부러우면서도 불가사의하다. 유한한 삶 앞에서 두 어머니의 굳은 심지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어버이날은 효도하러 가는 게 아니라, 미욱한 나를 단련하는 마음의 장을 확인하러 가는구나, 하는.
김살로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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