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 "밥 먹었니?"는 "사랑해"가 아니다

  •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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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11  |  수정 2023-05-11 06:54  |  발행일 2023-05-11 제22면
세계 양육비 부담 1위 한국

가족간 애정의 표현과 소통

캐나다인에 비해 단조로워

관심과 사랑 담긴 대화 통해

어린세대 행복지수 높여야

[더 나은 세상] 밥 먹었니?는 사랑해가 아니다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내가 만난 많은 캐나다인은 애틀랜틱 캐나다라고 불리는, 대서양 연안의 캐나다 동부를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았다. '빨강머리 앤'의 배경인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도 여기에 속한다. 캐나다에 오래 살았지만, 몇 년 전 노바스코샤주의 주도 핼리팩스에서 열린 이민·이주와 통합, 다양성에 관한 학회 발표 때문에 처음 가보았다. 내 연구는 이민자와 난민을 위한 언어교육 정책 분석. 유럽 이주민과 원래 살던 원주민, 그 후 세계 곳곳에서 온 이민자로 이루어진 캐나다는 뉴스코틀랜드라는 뜻의 라틴어인 노바스코샤란 주 이름에서 보듯 유럽식 제도와 문화의 영향이 큰 나라이다.

오래된 건물들이 보존된 다운타운, 자기 도시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친절한 주민들, 신선한 해산물 요리, 캐나다 역사와 얽힌 이야기들을 가진 매력 넘치는 바닷가 도시 핼리팩스. 랍스터 요리로 유명한 'five fishermen(다섯 어부)식당'은 원래 장례식장을 개조한 곳인데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부유한 승객들의 시체가 실려 왔던 곳이라고. 이민 박물관은 20세기 유럽에서 배를 타고 온 이주민들이 도착한 캐나다 첫 관문으로 당시 선실 모습 등이 꾸며져 있다. 토론토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가 영국인인 엄마 이름이 승객 리스트에 있다고 같이 찾느라 더 흥미진진했던 곳.

다양성이 국가 정체성의 키워드인 캐나다에서는 '조상 찾기'가 활발하고 초·중·고·대학의 학습활동에도 많이 이용된다. 몇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대다수가 다른 나라에서 온 조상이 있는 다문화사회인 캐나다 사람들 사이의 유사점을 강조하려는 것. 또한 가족 간 말로 하는 감정표현이 매우 풍부하다. 여전히 사랑한다는 말과 행동을 일상에서 표현하는 걸 어색해하는 듯한 한국의 가족들에 비해 중장년의 성인과 노년층 부모 사이의 통화 끝에도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등의 표현이 흔하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창업자인, 이민 1세대 부모를 둔 아시아계 미국인과 대화하다 그 친구가 그랬다. "아시아 가족들은 감정표현이 억압되어 있잖아. 왜, 부모님이 '사랑해(I love you)'라고 말하는 대신에 '밥 먹었니(Did you eat)' 하는 거."

학위공부 끝날 무렵 엄마가 돌아가셨다. 당시 같이 공부하던 캐나다 친구가 부모님을 연달아 잃었는데 친구들끼리 위로해 주다 결론이 "Just say I love you(그냥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충분히 말해드려)"였다. 한국에서 엄마와 병실에 있던 어느 날, 엄마 옆 침대에 누워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했다. 아픈 우리 엄마가 답했다. "나도 우리 현정이 사랑해." 그 기억은 내 가슴에 영원히 남아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지난 주말, 티베트불교 수행을 전하는 서울 경복궁 옆 세첸코리아센터에서 열린 감사일기 강좌에 다녀왔다. 그저께 어버이날 아침, 80대인 아빠를 안아드리며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라고 말씀드렸다. 야윈 아빠의 등이 참 따뜻했다. 눈물이 났다.

가정의 달인 5월. 한국이 1인당 국내총생산 기준 세계에서 양육비 부담 1위국이란 기사를 보았다. 반면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이 느끼는 주관적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개 국가 중 가장 낮다는 기사도. 한국의 부모는 과연 누구를 위해 그 많은 돈과 시간 그리고 자신의 삶을 쏟아붓고 있을까? 2023년 한국의 가족은 어떻게 서로 사랑하고 있는가?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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