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형복의 텃밭 인문학] 호미 든 텃밭농부…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 삶 꿈꾸다

  • 채형복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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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12  |  수정 2023-05-12 08:10  |  발행일 2023-05-12 제38면
일하면 할수록 타인과 단절 황폐화

결과 중시 탁월한 성과 도출 압박감

학문 즐기지 못하고 실적 쌓기 골몰

심신 피폐 자연으로 돌아가자 결심

휴식과 놀이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

채소 가꾸며 삶을 놀이로 행복 찾아

[채형복의 텃밭 인문학] 호미 든 텃밭농부…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 삶 꿈꾸다
〈게티이미지뱅크〉
[채형복의 텃밭 인문학] 호미 든 텃밭농부…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 삶 꿈꾸다
채형복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할 줄 아는 존재다. 인간이 가진 이런 본성을 일컬어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고 한다. 1957년 스위스 작가 막스 프리슈가 자신의 소설 제목으로 쓰기 시작한 이래 이 말은 여러 학자에 의해 폭넓게 사용되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에는 도구를 이용하여 진화와 발전을 이끄는 창조적인 힘이 있다. 인간은 그 힘을 이용하여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이를 응용하여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로 활용한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도구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은 어린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손으로 무엇을 만지고 만들어내는 놀이를 좋아한다. 아이들에게 놀이의 도구나 대상은 중요치 않다. 모래와 장난감 혹은 나무토막이든 아이들은 손에 잡힌 것들을 활용하여 그 나름대로 뭔가를 만들어낸다. 도구와 손을 이용한 만들기를 통해 인류는 진화하고 진보할 수 있었다.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대략 기원전 8,000~7,000년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농경 이전에는 자연에 있는 식물을 채집하거나 동물을 사냥하며 살았으나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바뀌는 시점을 전후하여 인류는 돌로 만든 도구를 이용하여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었다. '도구를 사용하여 노동하는 인간' 호모 파베르가 지구상에 등장한 것이다. 농경을 통하여 생존에 필요한 식량을 생산하고 저장하는 농경 역사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인간은 타고난 호모 파베르인 셈이다.

그러나 인간이 단순히 도구를 사용하여 노동하는 것만으로 인류 역사의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도구를 원활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유능력이 있어야 했는데,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그 역할을 수행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이 능력을 바탕으로 인류는 과학, 기술, 예술, 언어, 문화를 포함한 많은 분야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현대의 사회정치 체제와 종교는 물론 최첨단의 과학기술문명 모두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사유하는 힘'에서 나온 것이다. 데카르트는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이 힘을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이라는 유명한 라틴어 명제로 표현하였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뜻을 가진 이 말은 '사유하는 존재'라는 인간의 본성을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 생각하는 힘을 이용하여 지구의 지배자이자 최상위포식자가 될 수 있었다.

이처럼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동물종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절대 강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호모 파베르가 가진 장점을 흡수하여 인류 문명 발전을 위한 동력으로 삼는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인간이 이룩한 창조와 파괴의 문화와 문명은 '작업하는 인간' 혹은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파베르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업 혹은 도구는 인간의 손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그 손으로 대변되는 신성한 노동으로 인간은 사회의 생산과 발전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도 적지 않다. 과학기술과 기계문명에 지나치게 의존한 인간은 현대사회에서 오히려 스스로 타인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자신을 소외시킴으로써 인간성의 파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도구를 만들어 열심히 일하면 할수록 인간은 고유한 본성을 잃고 내면은 황폐화되고 말았으니 호모 파베르의 역설이자 비극이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인간사회와 관계의 단절로 개인의 소외가 심화되었으며, 과도한 산업화와 도시집중으로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가 심화되는 등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여러 문제가 사회 이슈로 대두되었다.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호모 파베르가 야기한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놀이' 또는 '유희'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ce)'는 하위징아가 만든 말로 '놀이하는 인간' 혹은 '유희하는 인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놀이는 인간 문화의 본질이며, 단순히 여가 활동이나 게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에게 놀이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첫째, 놀이는 예술, 종교, 언어 그리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포함한 인간의 삶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둘째, 놀이는 창의성·상상력 및 혁신의 원천일 뿐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하게 한다. 셋째, 놀이는 이미 확립된 기존의 규범과 구조에 도전할 수 있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놀이는 인간 존재를 규정짓는 중요한 기준이며, 놀이를 통해 인간은 사회를 형성하고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장난기 많은 생명체이고, 놀이를 통해 문화를 즐기고 문명을 발전시키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직업 중에서 학자는 호모 사피엔스가 추구하는 인간의 전형이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책과 논문을 쓰고 연구 활동을 하기 위해 학자는 기본적으로 지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학자가 가진 그 능력은 호모 파베르가 가진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기능과 결합될 때 강력한 시너지를 발생한다. 문제는 호모 파베르가 어떤 일에 대한 결과를 지나치게 중시한다는 점이다. 그로 인하여 호모 파베르는 자신이 수행하는 일에 대해 탁월한 성과를 도출함으로써 끊임없이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전임교수가 되는 과정에서 나 역시 남들보다 더 많은 연구실적을 쌓아 지적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교수가 되고 난 이후에도 성과에 집착하는 마음은 쉬 사라지지 않았다. 그 당시의 나는 호모 파베르의 역할에 충실했지만 학문을 놀이 또는 유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책과 논문을 써서 실적 만들기에 골몰했다. 공부가 즐기고 놀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경쟁과 실적을 쌓아 타인의 평가와 인정을 받아야 하는 목적이자 수단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공부에만 매달린 채 날로 심신은 지치고 피폐해졌다. 학문은 더 이상 즐거운 놀이가 아니라 맹목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의무에 지나지 않았다. 나도 살고 학문을 즐기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공부든 일이든 놀이로 즐기기 위해서는 가끔 쉬면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휴식 없이 오로지 실적을 쌓기 위한 일에만 골몰하는 삶은 절대 행복할 수 없다. 그렇다고 놀이가 그저 노동을 위한 휴식이나 재충전의 보조물이 되어서도 아니 된다. 놀이를 인간의 원초적 본능으로 보고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쉼과 휴식, 놀이와 유희는 노동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고, 또한 삶을 겉으로 치장하고 가꾸는 사치나 허영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다. 열심히 일하면서 적절하게 쉬고 놀 때 우리는 보다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런 삶을 위해 나는 기꺼이 '호모 파베르 텃밭농부'가 되기로 했다. 그리고는 달랑 호미 한 자루 들고 텃밭 채소를 가꾸면서 삶을 놀이로 즐기는 호모 루덴스로 살고 있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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