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직터뷰] 손명원 힐튼 경주 판촉부장 "고객 통해 얻는 감성과 충족감이 나를 지치지 않게 해준 원동력"

  • 장준영,송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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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14 08:21  |  수정 2023-11-29 15:45  |  발행일 2023-06-14 제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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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 경주 오픈 때부터 32년째 한 부서에서 근무 중인 손명원 판촉부장이 사무실에서 자신의 업무와 그간의 소회를 들려주고 있다. 송종욱기자 sjw@yeongnam.com
'호텔리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20년이 훌쩍 지난 2001년 4~6월 방송된 이 작품은 배용준·송윤아·김승우·송혜교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 특급호텔을 배경으로 일과 사랑을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그려낸 수작으로 평가된다. 시청률 38%를 찍었을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린 덕분에 호텔과 호텔리어는 당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호화롭고 세련된 시설에 맛과 멋을 갖추고, 격식을 차린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는 수준 높은 호텔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세계적인 호텔체인 힐튼 경주가 1991년 오픈할 때부터 지금까지 30년 이상을 같은 호텔, 한 부서에서만 근무하며 '힐튼맨'으로 살아온 손명원(58) 판촉부장. 그는 여전히 현장에서 '완성형 호텔리어'를 꿈꾸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32년째 한 호텔 한 부서 근무
경주힐튼 원년멤버 '판촉홍보 달인'
"비수기 객실 점유율 제고 스트레스
성수기 오버부킹 발생땐 수습 진땀
매번 다른 돌발상황에 늘 긴장 연속"

'완성형 호텔리어'를 꿈꾼다

"고객 서비스 기대치가 높아질수록
최고를 위한 호텔리어의 몫도 커져
노력한 만큼 인적재산 쌓았다 자부
본심을 다해 인연을 맺은 고객들이
다시 믿고 찾아줄 때 큰 보람 느껴"

◆긴 세월이 천직을 만들었다

손 부장은 경주 토박이다. 일어를 전공하며 울산에서 보낸 대학시절을 제외하면 평생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 천성이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학교나 동네친구는 물론, 사회친구도 무척 많다. 세월의 길이만큼 그의 전화번호부도 빽빽해졌다. 그냥 알던 사람은 더 친해졌고 몰랐던 사이는 만남 이후 아는 사람으로 만드는 재주가 남다르다. 친화력과 함께 발이 넓다는 것은 그의 가장 큰 직업적 재산이자 든든한 지원군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더러 피곤하긴 하지만 내가 좀 잘하는 일이구나'라는 막연한 느낌이 문득문득 확신으로 다가오면서 줄곧 한 길을 달려왔다. 처음부터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천생 호텔리어였다.

5성급호텔은 숙박이나 힐링을 위한 최상위 시설 가운데 하나다. 만만찮은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호텔을 찾는 이유는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는 믿음과 자기만족 때문이다. 호텔은 시설과 서비스를 양대 축으로 고객의 가치소비를 충족시킨다. 그리고 고객들에게 만족감을 선사하는 데는 호텔리어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시설은 투자로 해결되지만, 감동은 느끼는 사람이 결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든 전통적인 브랜드는 추억이 항상 동행하기에 유행을 타지 않을뿐더러 믿고 찾는 경향이 있다. 호텔에서 그런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호텔리어는 좁은 의미로는 관리인을 뜻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각 부분에서 효율적인 호텔 운영을 위해 일하는 모든 종사자를 일컫는다. 그들은 객실부·식음료부·조리부·세일즈&마케팅부·예약부·연회부·시설부 등 규모에 따라 상당히 구체적인 파트에서 한 몸처럼 움직이며 호텔의 명성을 쌓고 서비스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애를 쓴다. 힐튼을 비롯, 메리어트·IHG·하야트·Accor 등 흔히 말하는 글로벌 5대 체인호텔 역시 기본적으로는 이런 시스템 아래 발전을 거듭해왔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게 현명하다

대학 졸업을 앞둔 손 부장도 여느 또래들처럼 취업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이런저런 직장정보를 알아보던 중 우연한 기회에 후배로부터 힐튼호텔 모집공고를 접하게 된다. 나름 일본어에 자신이 있었기에 특급호텔과 어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고 빠르게 스치면서 후다닥 지원을 했다. 더구나 힐튼이 경주에서 곧 그랜드오픈을 한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무난하게 합격한 그는 1991년 2월 서울힐튼으로 첫 출근을 했고 3개월여 동안 실무교육을 수료한 다음, 5월 경주힐튼 오픈에 맞춰 원년멤버가 됐다.

호텔의 '호'자도 몰랐던 손 부장이 30년 넘도록 '호텔밥'을 먹을 수 있었던 이유와 원동력은 다름 아닌 긍정적 마인드였다. 지금은 '감정노동'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아졌지만 당시에는 낯선 개념이었다. 그가 처음 배정받았고 지금껏 하고 있는 세일즈와 마케팅 업무 역시 그 범주에 속한 부분이 많다. 귀찮다는 반응이나 눈초리, 심할 경우 문전박대까지 당하는 등 숱한 일들이 그를 힘들게 하고 때론 좌절시켰지만 특유의 친화력으로 정면 돌파했다. 퇴근 후 곧바로 귀가하는 날이 1년에 손꼽을 정도로 적었다. 경주고 출신인 그는 동문을 만나거나 JC모임에 참석하는 등 낮보다 밤이 더 바쁜 생활을 쭉 해왔다. 누가 시켜서 했다면 그만뒀을 일을 그는 '즐겼다'고 에둘러 말했다. 어제·오늘 만난 사람들이 내일의 고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그를 항상 초심으로 이끌면서 피곤함을 잊게 했고 실제로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일과 사람에 미쳐 연애할 시간과 여유가 없었던 손 부장은 나이를 먹을수록 강해지는 집안의 성화에 못 이겨 틈틈이 선을 봤다고 했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던 터라 별다른 흥미를 못 느낀 데다, '이 사람이다' 싶을 정도의 인연도 찾지 못했다. 몇 년을 그렇게 보내며 선 자체가 익숙해지고 무뎌지던 30대 중반 어느 날, 친척 어르신을 통해 부인 송혜진(55)씨를 소개받았다. 안정적인 삶에 대한 욕구가 커질 즈음 운명적으로 송씨를 만나 99년 5월 가정을 꾸렸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두 딸을 둔 손 부장은 "지금도 사람들 만나느라 귀가가 늦는 편인데 집사람이 많이 이해해주고 가정을 잘 꾸려줘서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고 감사함을 표현했다.

◆성실과 신뢰는 언젠가는 보상받는다

힐튼 경주 1층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은 넓고 쾌적한 로비나 안락한 객실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상대적으로 좁게 느껴지고 조금은 답답해 보이기도 한 그 사무실에서 손 부장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냈다. 어쩌면 집보다 더 친숙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신입 때는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자리였다가 경력이 쌓이면서 차츰 뒤로 또는 옆으로 이동한 끝에 지금의 자리는 벽을 등지고 있다.

그는 본심을 다해 인연을 맺은 고객들이 믿고 다시 찾아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힐튼에서 결혼식을 했던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든지, 신입 때 인연을 맺었던 분들이 자식 및 손자들과 가족모임을 하면서 일부러 연락을 줄 때 등이 그렇다. 자신이 보인 진심을 고객이 인정해주고 그 에너지를 받아 또 다른 인연을 위한 동력으로 삼는 선순환 구조가 오늘의 그를 있게 만들었다.

술을 거의 하지 못함에도 불구, 술자리에 초대를 받을 정도로 사교성이 돋보이는 그는 "시설과 기술이 주는 변화와 만족감은 한계가 있지만 사람을 통해 얻는 감성과 충족감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면서 "고객들의 기대치가 높아질수록 최고와 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호텔리어의 몫은 커진다"고 강조했다.

호텔은 성수기와 비수기, 주중과 주말 상황이 많이 다르다. 비수기나 주말에는 객실이 없어서 난리고, 비수기나 주중에는 객실 여유가 많아도 팔기가 어렵다. 손 부장 부서의 영역이자 존재가치인 셈이다. 오버부킹이라도 발생하면 난감하고 뒷수습도 만만치 않다. 이런 돌발상황을 매끄럽게 처리해야 하고 객실점유율도 끌어올려야 하기에 스트레스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호텔리어 30년이면 웬만한 상황은 거의 겪어봤지만, 사람·사안·유형이 매번 다르기 때문에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그가 긴 세월 동안 터득한 해법은 성실과 신뢰가 없다면 순간적인 봉합은 가능할지 몰라도 깔끔한 마무리와 인연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에겐 아쉬움이 하나 남아있다. 그동안 입사 당시 처음 담당했던 판촉과 홍보에만 올인했기 때문에 맡은 업무 외엔 전문적인 지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호텔에 대한 시스템을 제대로 파악했다면 고객들에게 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새삼 들더라는 것이다. 뿌린 명함만큼 인적 재산을 쌓았다고 자부하는 손 부장은 "총지배인을 포함, 힐튼 경주의 모든 구성원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저에게 힐튼은 사랑이었고 호텔리어는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준영 논설위원 changc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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