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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경 정경부장 |
2007년 5월17일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색다른 기업행사가 열렸다.
한국델파이 등 연매출액 1천억원이 넘는 대구 기업 18곳과 경제부서 근무경력이 있는 대구시 간부공무원 18명이 결연식을 맺었다. '천억클럽' 기업들이 더 큰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전담 지원하겠다며 시가 핫라인을 구축한 것. 김범일 시장 작품이다. 김 시장이 '스타기업 '육성제도와 함께 투 트랙으로 밀던 기업지원정책 중 하나다. 민간기업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정조준했다. 국가산단 등 사세가 커질 기업의 투자수요를 넉넉히 담을 그릇도 한창 준비할 시기였다. 당시는 대구 인구 250만명 (2006년 249만 6천명)이 붕괴된 이듬해였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김 시장 재임 기간인 2010년엔 인구 250만명 선을 회복했고, 이 기조는 퇴임 전까지 유지됐다.
14년의 산업구조 전환기를 거친 올해 6월7일. 이번엔 대구상공회의소가 호텔수성에서 천억클럽 기업 대표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다. 취임 후 한 번도 대구상의 행사에 참석하지 않던 홍준표 대구시장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그만큼 지역 중견기업들에 대한 강한 기대감이 표출된 셈이다. 올해 대구 인구는 235만명. 미래 성장을 담보하려면 민간기업 중심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할 타이밍이다.
영남일보를 통해 천억클럽 가입 기업(98개사)의 규모와 업종별 현황이 자세히 소개되면서 이날 행사의 의미는 배가됐다. 대구 기업의 흥망성쇠(興亡盛衰 )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반응이 많았다. 실제 차부품·기계·섬유 중심에서 신산업 쪽으로 무게중심이 확실히 이동한 정황이 포착됐다. 특히 제조업 중 2차전지·반도체·전기차·의료기기 등 첨단업종의 약진이 도드라졌다. 엘앤에프, 에스앤에스텍, 성림첨단산업, 카펙발레오, 대성하이텍, 이수페타시스, 메가젠임플란트 등이 신(新)리딩기업이 됐다. 경창산업, 삼보모터스 등 내연기관차 부품제조사들이 전기차 부품사로의 성공적 전환도 괄목할 만하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변화도 있었다. 천억클럽 기업 중 섬유기업은 티케이케미칼 단 한 곳에 불과했다. '밀라노 프로젝트' 수혜업종의 위상은 온데간데없다. 성서2차산단(1988~1992년 조성)을 끝으로 대구는 더 이상 섬유공장 신규 부지를 수용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경북으로 이동했다. 한때 대구 간판 차부품 업체로 통했던 한국델파이는 이래AMS와 에스트라오토모티브시스템으로 쪼개졌다. 그나마 둘 다 매출액은 수천억 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대구 토종 유통기업의 자존심 '대구백화점'은 명단에 아예 빠졌다. 지난해 매출 1조4천억원을 달성한 대구신세계백화점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크레텍책임(기계공구), 대명유통(곡물) 등 특정 품목을 취급하는 유통 기업은 21개나 명단에 포함됐다. 의약품 유통기업 5개 중 제약기업이 하나도 없다는 점은 못내 아쉽다. '메디시티 도시' '첨단의료복합단지 도시' 대구의 아픈 손가락이다.
대구 산업 지형도를 또 한 번 확 바꿔줄 매머드급 경제 모멘텀이 필요하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대구천억클럽 간담회에서 홍 시장은 "대구경북신공항 건설 및 공항 후적지 개발사업에 지역기업들이 적극 참여를 해달라"고 강조했다. 2030년 공항 개항 전까지 남은 기간은 7년. 이 기간 대구의 천억클럽 기업은 몇 개나 늘어날까.
최수경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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