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저는 고졸 노동자 시인입니다" 김종필 시인의 글 사랑

  • 조경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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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27 11:24  |  수정 2023-06-28 08:12  |  발행일 2023-06-28 제21면
지난 23일 용학도서관서 생활 글쓰기 강연
지금까지 시집 4권, 수필집 1권 등 5권 출간
"아프고 불안한 순간을 글로 풀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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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시인(오른쪽)이 대구 수성구립 용학도서관에서 강연을 마치고 감사장을 전달 받은 뒤 김상진 관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저는 고졸 노동자가 맞습니다."


지난 23일 대구 수성 구립 용학도서관(관장 김상진). 초설 김종필(59 노원동) 시인이 '용학이네 사람책방' 생활 글쓰기 '나는 고졸 노동자입니다'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김씨는 자신이 시를 쓰게 된 계기와 생활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한 시간 동안 풀어놓았다.


김씨는 1984년 대구공고 졸업 후 일주일 만에 입대했고, 12년간 군 생활을 했다. 제대 후 두 번의 사업 실패의 쓴맛을 본 김씨는 현재 아파트 현관 방화문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김씨는 "오늘도 두 시 반까지 일하다가 조퇴하고 왔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김씨가 글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다. 과제물로 제출한 자작 시를 낭독했다. 선생님의 칭찬에 한껏 기분이 좋아진 김씨는 시와 수필을 습작하기 시작했다. 제도권 문학 수업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김씨는 "당시 국어 선생님이 지금까지 글쓰기의 표본"이라고 했다.


"글이라는 것은 치유와 소통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자기 체험적인 글입니다. 근본적으로 유쾌하거나 즐거운 글은 잘 없습니다. 아프고 불안할 때 자신을 다독거리기 위해 씁니다." 김씨에게 사는 게 막막했던 순간도 있었다. 1997년 다니던 방화문 공장이 폐업했을 때다. 군 생활만 하다 보니 배운 기술도 없고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아내와 안경 고리를 조립하고 도라지 껍질을 까는 부업을 했다. 팔달시장에서 10kg 짜리 도라지 한 포대를 가지고 오면 껍질을 벗기고 면도칼로 네 등분으로 길게 나누는 작업이었다. 한 포대에 칠천 원짜리를 하루에 세 포대나 작업을 했다. 한 포대에 7천원을 받았다. 종일 매달려야 아이 둘과 먹고 살 수가 있었다. 당시 부업을 함께한 아내를 표현한 시를 썼다.


'씩씩한 여자는 힘겨운 만큼씩 늘어진 뱃살을 있는 힘껏 복대로 조이며 사내의 단단한 다리 같은 각목에 처녀의 가느다란 종아리처럼 쭉 뻗은 도라지를 올려놓고 스타킹을 벗기듯 껍질을 긁었다. 손등에 힘줄이 푸르게 돋을 때마다 여지없이 뱃살이 꿈틀거렸지만 밥벌이 도라지 냄새에 젖으며 벗기고 벗겨지는 삶. 마침내 발가벗겨진 도라지를 갈기갈기 찢기 시작하고 남자는 빈 그릇을 닦으며 힐끔힐끔 눈치만 보고 있는데 눈치 없는 파리가 느긋하게 희뿌연 허벅지에 침을 묻혔다. 여자는 칼을 쥔 손을 힘껏 휘둘렀고 흙 묻는 면장갑이 흥건히 젖도록 흐르는 피에 참았던 눈물에 여자는 처음으로 외쳤다. 당신 때문이야.' [도라지 껍질을 벗기는 여자]
무능한 남편을 원망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아내가 몸에서 피가 나니까 "당신 때문이야"라며 낮은 소리로 외쳤을 때 시인은 아팠다. 그때 쓴 시를 낭독하면서 울컥하기도 했다. "아프고 힘겹고 살아가는 순간 순간을 글로 적어내는 것, 이것이 생활 글쓰기입니다. 슬프지 않고 시를 쓸 수가 있을까요." 김씨는 슬프고 아플 때 위안이 되는 글쓰기가 자신을 지탱했다고 했다. 김씨는 지금까지 시집 4권 산문집 1권을 합쳐 모두 5권의 책을 출간했다.


시집 '어두운 밤에도 장승은 눕지 않는다' '쇳밥' '무서운 여자'와 수필집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만큼 외롭다'를 펴냈다. 최근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갱시기, 깡통꽁치, 무청시랫기국, 양미리구이 등을 주제로 시를 지어 '뭉티기'란 시집을 출간했다.


'공장일 몹시 힘겨울 때면/ 하루 품으로 먹는/ 뭉글뭉글 핏덩이처럼 검붉던 뭉티기/ 오직 몸으로 살아내야 하는 처지/ 혼자 다 먹을 수 있는 한 접시뿐이지만/ 내 살 한 점 떼어 주는 마음이면/ 세상살이 간격 좁혀질까 생각하는 목요일' [뭉티기]


김씨는 강연 말미에 "글을 놓지 않고 잘 늙고 싶다"라고 희망했다. " 불덩이를 등에 지고 일하기에는 제 나이가 많지요. 육체적으로 부대끼는 일이지만, 이 또한 내 삶의 방식이며 나의 생계라는 측면에서 다행입니다. 글을 쓰니까 위안이 되고 힘이 됩니다."


글·사진=조경희 시민기자 ilikelake@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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