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문화유산의 진정한 가치

  • 박종진
  • |
  • 입력 2023-07-19  |  수정 2023-07-19 07:04  |  발행일 2023-07-19 제26면
지역 곳곳 방치된 문화유산

스러지는 건 결국 시간 문제

카페, 숙소, 전시·공연장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해야

유산으로 진정한 가치 가져

[동대구로에서] 문화유산의 진정한 가치
박종진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

안쓰러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지역 곳곳에 초라하게 남겨진 문화유산과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세월의 모진 풍파를 이기지 못하고 체념한 듯 의기소침해 있는 모습. 마치 낯선 방문객의 시선마저 피하는 것 같다.

일반 대중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정자나 서원, 정려각, 역사적 인물의 생가 등 건축물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무성한 잡초와 거미줄 사이로 형태만 겨우 보존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잡초마저 자취를 감춘 겨울철에는 그 모습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그나마 유형 문화재로 지정된 경우에는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나 그렇지 못한 곳은 거의 방치 수준에 놓여있다. 관리 주체가 없거나 있다고 해도 만만찮은 관리 비용에 손을 놓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지역에서 제법 이름난 선비의 발자취가 묻어있는 서원과 누정도 예외는 없다. 세월에 장사 없듯이 지속적인 관리 없이는 원형을 제대로 보존하기가 힘들다. 허물어지고 스러지는 건 시간문제다. 지방 소멸 이전에 지역 문화재부터 소멸할 판국이다.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무시까지 당하고 있다. 목적지로 설정하지 않는 이상 내비게이션에는 문화유산의 위치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차량 주행 중 내비게이션 화면을 보면 주변에 있는 공원이나 학교, 아파트 등의 이름은 표기돼도 문화재 이름은 찾아보기 힘들다. 주변 표시 설정에 들어가도 식당이나 카페, 주유소까지 나타나게 할 수 있지만, 문화재를 보여주는 항목은 없다. 도로 주변에 문화유산이 보여도 명칭조차 알 수 없는 현실이다.

네이버 지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도동서원조차 '메인 검색어'로 찾지 않으면 지도상 위치를 알 수 없다. 달성군이나 진등산 같은 단어로 검색하면 낙동강 변을 따라 도동1리 마을회관, 도동나루, 도동터널만 지도상에 표시될 뿐이다. 대구를 대표하는 문화재마저 상황이 이런데 다른 곳들은 찾아볼 필요도 없다. 존재의 사실마저 부정당하는 것 같아 또 한 번 마음이 쓰린다.

다행히 명승지로 널리 알려진 곳들은 관리 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도동서원은 차치하고 하목정이나 남평문씨본리세거지, 옻골마을 등은 생기가 넘친다. 쉽게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방문객도 많지만, 이곳에선 여전히 사람이 산다. 손때가 묻어나는 공간이 오래가는 법이다. 목조로 지어진 한옥은 더욱더 그렇다. 결국 문화유산이 잘 관리되기 위해선 사람이 필요한 셈이다. 이는 다시 인건비 문제로 되돌아온다. 그럼 비용 문제에 부딪히지 않고 해결하는 방안이 있을까. 완벽한 해답은 아닐지언정 시도해 볼 만한 사업들은 충분히 존재한다. 한훤당 고택이 대표적이다. 김굉필 선생의 후손들은 고택을 일반인과 공유한다. 고택 내 작은 건물을 새로 지어 카페로 만들고 사랑채와 행랑채를 손님들에게 내준 것이다. 관리 비용을 창출하면서 보다 많은 이들이 고택의 정취를 즐기게 됐다. 고택의 경우에는 종종 카페나 갤러리, 숙소 등으로 변신한 경우가 드물지 않다. 서원의 경우에는 설립 취지에 맞게 공부방이나 작가, 미술가 등 예술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대여하는 방법도 있다. 작업실이 필요한 예술가에게 공간을 내어주고 덤으로 영감까지 전해 줄 수 있다. 정기적으로 작은 음악회나 전시회를 여는 것도 사람을 모으면서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서원스테이는 이미 다양한 곳에서 운영 중인 만큼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아름다운 경치를 지닌 정자와 누각은 계절 꽃 등을 심어 사진찍기 좋은 명소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물론 이 모든 건 관리 주체의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건축가로 유명한 유현준 교수는 "건축물의 진정한 의미는 건축물이 사람과 맺는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고 강조한다. 선조가 남긴 문화유산도 마찬가지다. 후대가 그것을 활용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때 진정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박종진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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